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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세종대왕 즉위 십오년에 홍회문 밖에 한 재상이 있으되, 성은 홍이요, 명은 문이니, 위인이 청렴강직하여 덕망이 거룩하니 당세의 영웅이라. 일찍 용문에 올라 벼슬이 한림에 처하였더니 명망이 조정의 으뜸 되매, 전하 그 덕망을 승이 여기사 벼슬을 돋우어 이조판서로 좌의정을 하이시니, 승상이 국은을 감동하여 갈충보국하니 사방에 일이 업고 도적이 없으매 시화연풍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
세종 즉위 십오년에 홍회문 밖에 한 재상이 있으되, 성은 홍이요, 명은 문이니, 위인이 청렴강직하여......


일일은 승상 난간에 비겨 잠깐 졸더니, 한풍이 길을 인도하여 한 곳에 다다르니, 청산은 암암하고 녹수는 양양한데 세류 천만 가지 녹음이 파사하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춘흥을 희롱하여 양류간에 왕래하며 기화요초 만발한데, 청학 백학이며 비취 공작이 춘광을 자랑하거늘, 승상이 경물을 구경하며 점점 들어가니, 만장절벽은 하늘에 닿았고, 굽이굽이 벽계수는 골골이 폭포되어 오운이 어리었는데, 길이 끊어져 갈 바를 모르더니, 문득 청룡이 물결을 헤치고 머리를 들어 고함 하니 산학이 무너지는 듯 하더니, 그 용이 입을 벌리고 기운을 토하여 승상의 입으로 들어오거늘, 깨달으니 평생 대몽이라. 내염에 헤아리되 "필연 군자를 낳으리라." 하여, 즉시 내당에 들어가 시비를 물리치고 부인을 이끌어 취침코자 하니, 부인이 정색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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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은 국지재상이라, 체위 존중하시거늘 백주에 정실에 들어와 노류장화같이 하시니 재상의 체면이 어디에 있나이까?"
......천생이나 적원을 풀어 버리고, 효우를 완전히 하여 신수를 쾌달하니 만고에 희한한 일이기로 후인이 알게한 바이러라.
 
승상이 생각하신 즉, 말씀은 당연하오나 대몽을 허송할까 하여 몽사를 이르지 아니하시고 연하여 간청하시니, 부인이 옷을 떨치고 밖으로 나가시니, 승상이 무료하신 중에 부인의 도도한 고집을 애달아 무수히 차탄하시고 외당으로 나오시니, 마침 시비 춘섬이 상을 드리거늘, 좌우 고요함을 인하여 춘섬을 이끌고 원앙지낙을 이루시니 적이 울화를 덜으시나 심내에 못내 한탄하시더라.
 
춘섬이 비록 천인이나 재덕이 순직한지라, 불의에 승상의 위엄으로 친근하시니 감이 위령치 못하여 순종한 후로는 그날부터 중문 밖에 나지 아니하고 행실을 닦으니 그달부터 태기있어 십삭이 당하매 거처하는 방에 오색운무 영롱하며 향내 기이하더니, 혼미중에 해태하니 일개 기남자라. 삼일 후에 승상이 들어와 보시니 일변 기꺼우나 그 천생됨을 아끼시더라. 이름을 길동이라 하니라.
 
이 아이 점점 자라매 기골이 비상하여 한 말을 들으면 열 말을 알 고, 한 번 보면 모르는 것이 없더라. 일일은 승상이 길동을 데리고 내당에 들어가 부인을 대하여 탄식 왈,
 
"이 아이 비록 영웅이나 천생이라 무엇에 쓰리오. 원통하도다. 부인의 고집이여, 후회막급이로소이다.“
 
부인이 그 연고를 묻자오니, 승상이 양미를 빈축하여 왈,
 
"부인이 전일에 내 말을 들으셨던들 이 아이 부인 복중에 낳을 것을 어찌 천생이 되리요.“
 
인하여 몽사를 설화하시니, 부인이 추연 왈,
 
"차역 천수오니 어찌 인력으로 하오리까.“
 
세월이 여류하여 길동의 나이 팔세라. 상하 다 아니 칭찬할 이 없고 대감도 사랑하시나, 길동은 가슴의 원한이 부친을 부친이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매 스스로 천생됨을 자탄하더니, 칠월 망일에 명월을 대하여 정하에 배회하더니 추풍은 삽삽하고 기러기 우는 소리는 사람의 외로운 심사를 돕는지라. 홀로 탄식하여 왈,
 
"대장부 세상에 나매 공맹의 도학을 배워 출장입상하여 대장인수를 요하에 차고 대장단에 높이 앉아 천병만마를 지휘중에 넣어두고, 남으로 초를 치고, 북으로 중원을 정하며, 서로 촉을 쳐 사업을 이룬 후에 얼굴을 기린각에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유전함이 대장부의 떳떳한 일이라. 옛 사람이 이르기를 ‘왕후장상이 씨없다.’ 하였으니 나를 두고 이름인가. 세상 사람이 갈관박이라도 부형을 부형이라 하되 나는 홀로 그렇지 못하니 어떤 인생으로 그러한고.“
 
울억한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칼을 잡고 월하에 춤을 추며 장한 기운 이기지 못하더니, 이때 승상이 명월을 사랑하여 창을 열고 비겼더니, 길동의 거동을 보시고 놀래 가로되,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네 무슨 즐거움이 있어 이러하느냐?“
 
길동이 칼을 던지고 부복 대왈,
 
“소인은 대감의 정기를 타 당당한 남자로 낳사오니 이만 즐거운 일이 없사오되, 평(생) 설워하옵(기)는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하여 상하 노복이 다 천히 보고, 친척 고두도 손으로 가르쳐 아무의 천생이라 이르오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사오리까?”
 
인하여 대성통곡하니, 대감이 마음에 긍측이 여기시나 만일 그 마음을 위로하면 일로조차 방자할까 하여 꾸짖어 왈.
 
“재상의 천비 소생이 너 뿐 아니라. 자못 방자한 마음을 두지 말라. 일후에 다시 그런 말을 번거이 한 일이 있으면 눈 앞에 용납치 못하리라.”
 
하시니, 길동은 한갓 눈물 흘릴 뿐이라. 이윽히 엎드려있더니, 대감이 물러가라 하시거늘, 길동이 돌아와 어미를 붙들고 통곡 왈,
 
“모친은 소자와 전생연분으로 차생에 모자 되오니 구로지은을 생각하오면 호천망극하오나, 남아가 세상에 나서 입신양명하여 위로 향화를 받들고, 부모의 양육지은을 만분의 하나라도 갚을 것이거늘, 이 몸은 팔자 기박하여 천생이 되어 남의 천대를 받으니, 대장부 어찌 구구히 근본을 지키어 후회를 두리요. 이 몸이 당당히 조선국 병조판서 인수를 띠고 상장군이 되지 못할진대, 차라리 몸을 산중에 붙여 세상영욕을 모르고자 하오니, 복망 모친은 자식의 사정을 살피사 아주 버린 듯이 잊고 계시면 후일에 소자 돌아와 오조지정을 이를 날 있사오니 이만 짐작하옵소서."
 
하고, 언파에 사기 도도하여 도리어 비회 없거늘. 그 모 이 거동을 보고 개유하여 왈,
 
"재상가 천생이 너뿐 아니라.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되 어미의 간장을 이다지 상케 하느냐? 어미의 낮을 보아 아직 있으면 내두에 대감이 처결하시는 분부 없지 아니하리라.“
 
길동이 가로되,
 
"부형의 천대는 고사하옵고, 노복이며 동유의 이따금 들리는 말이 골수에 박히는 일이 허다하오며, 근간에 곡산모의 행색을 보오니 승기자를 염지하여 과실없는 우리 모자를 구수같이 보아 살해 해할 뜻을 두오니 불구에 목전대환이 있을지라. 그러하오나 소자 나간 후 이라도 모친에게 후환이 미치지 아니케 하오리다.“
 
그 어미 가로되.
 
"네 말이 자못 그러하나 곡산모는 인후한 사람이라.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요?"
 
길동 왈,
 
"세상사를 측량치 못하나이다. 소자의 말을 헛되이 생각지 마시고 장래를 보읍소서.“
 
하더라.
 
원래 곡산모는 곡산 기생으로 대감의 총첩이 되어 뜻이 방자하기로, 노복이라도 불합한 일이 있으면 한 번 참소에 사생이 관계하여 사람이 못되면 기뻐하고 승하면 시기하더니, 대감이 용몽을 얻고 길동을 낳아 사람마다 일컫고 대감이 사랑하시매, 일후 총을 앗길까 하며, 또한 대감이 이따금 희롱하시는 말씀이 "너도 길동같은 자식을 낳아 나의 모년재미를 도우라." 하시매, 가장 무료하여 하는 중에 길동의 이름이 날로 자자하므로 초낭 더욱 크게 시기하여 길동 모자를 눈의 가시같이 미워하여 해할 마음이 급하매, 흉계를 짜아내어 재물을 흩어 요괴로운 무녀 등을 불러 모의말 말하고 축일왕래하더니, 한 무녀 가로되,
 
"동대문 밖에 관상하는 계집이 있으되, 사랑의 상을 한 번 보면 평생 길흉화복을 판단하오니, 이제 청하여 약속을 정하고 대감전에 천거하여 가중 전후사를 본 듯이 이른 후에 인하여 길동의 상을 보고 여차여차히 아뢰어 대감의 마음을 놀래면 낭자의 소회를 이룰까 하나이다.“
 
초낭이 대희하여, 즉시 관상녀에계 통하여 재물로써 달래고, 대감댁 일을 낱낱이 가르치고, 길동 제거할 약속을 정한 후에 날을 기약하고 보내니라.
 
일일은 대감이 내당에 들어가 길동을 부른 후에 부인을 대하여 가로되,
 
"이 아이 비록 영웅의 기상이 있으나 어디다 쓰리요.“
 
하시며 희롱하시더니, 문득 한 여자 밖으로부터 들어와 당하에 뵈거늘, 대감이 괴히 여겨 그 연고를 물으신대, 그 여자 복지 주왈.
 
"소녀는 동대문 밖에 사옵더니, 어려서 한 도인을 만나 사람의 상보는 법을 배운 바 두루 다니며 관상차로 만호장안을 편람하옵고, 대감댁 만복을 높이 듣고 천한 재주를 시험코자 왔나이다.“
 
대감이 어찌 요괴로운 무녀를 대하여 문답이 있으리요마는 길동을 희롱하시던 끝인 고로 웃으시며 왈,
 
“네 암커나 가까이 올라 나의 평생을 확론하라.“
 
하시니, 관상녀 국궁하고 당에 올라 먼저 대감의 상을 살핀 후에 이왕지사를 역역히 아뢰며 내두사를 보는 듯이 논단하니, 호발도 대감의 마음에 위월한 마디 없는지라. 대감이 크게 칭찬하시고 연하여 가중 사람의 상을 의논할새, 낱낱이 본 듯이 평론하여 한 말도 허망한 곳이 없는지라. 대감과 부인이며 좌중제인이 대혹하여 신인이라 일컫터라. 끝으로 길동의 상을 의논할새, 크게 칭찬 왈,
 
"소녀가 열읍에 주류하며 천만인을 보았으되 공자의 상같은 이는 처음이려니와 알지 못게라, 부인의 기출이 아닌가 하나이다.“
 
대감이 속이지 못하여 왈,
 
"그는 그러하거니와 사람마다 길흥영욕이 각각 때있나니 이 아이 상을 각별 논단하라.“
 
하니, 상녀가 이윽히 보다가 거짓 놀라는 체 하거늘, 괴히 여겨 그연고를 물으신대 함구하고 말이 없거늘, 대감이 가로되,
 
"길흉을 호발도 기이지 말고 보이는 대로 의논하여 나의 의흑이 없게 하라.“
 
관상녀 가로되,
 
"이 말씀을 바로 아뢰면 대감의 마음을 놀래일까 하나이다.“
 
대감 왈,
 
"옛날 곽분양같은 사람도 길한 때 있고 흉한 때있었으니 무슨 여러 말이 있느냐? 상법 보이는 대로 기이 말라.“
 
하시니. 관상터 마지 못하혀 길동을 치운 후에 그윽히 아뢰되,
 
"공자의 내두사는 여러 말씀 버리옵고 성즉 군왕지상이요, 패즉 측량치 못할 환이 있나이다.“
 
한대, 대감이 크계 놀래어 (이)윽히 진정란 후에 상녀를 후이 상급하시고 가로되,
 
"이같은 말을 삼가 발구치 말라.“
 
엄히 분부하시고, 왈,
 
"제 늙도록 출입치 못하게 하리라.“
 
하시니, 상녀 왈,
 
"왕후장상이 어디 씨 있으리까?“
 
대감이 누누당부하시니, 관상녀 공수 수명하고 가니라.
 
대감이 이 말을 들으신 후로 내념에 크게 근심하사 일념에 생각하시되, “이놈이 본래 범상한 놈이 아니요, 또 천생됨을 자탄하여 만일 범람한 마음을 먹으면 누대 갈충보국하던 일이 쓸데없고 대화 일문에 미치리니 미리 저를 없애어 가화를 덜고자 하나 인정에 차마 못할 바라.” 생각이 이러한즉 선처할 도리없어 일념이 병이 되어 식불감 침불안하시는지라. 초낭이 기색을 살핀 후에 승간하여 여쭈오되,
 
"길동이 관상년의 말씀같이 왕기 있어 만일 범람한 일이 있사오면 가화 장차 측량치 못할지라. 어리석은 소견은 적은 혐의를 생각지 마시고 큰 일을 생각하여 저를 미리 없이 함만 같지 못할까 하나이다.“
 
대감이 대책 왈,
 
"이 말을 경솥히 할 바가 아니거늘, 네 어쩌 입을 지키지 뭇하느냐? 도시 내 집 가운을 네 알 바가 아니라.“
 
하시니, 초낭이 황공하여 다시 말씀을 못하고, 내당에 들어아 부인과 대감의 장자를 대하여 여쭈오되,
 
"대감이 관상녀의 말씀을 들으신 후로 사념에 선처하실 도리 없사와 침식이 불안하시더니 일념의 병환이 되시기로 소인이 일전에 여차여차한 말씀을 아뢰온즉 꾸중이 났는 고로 다시 여쭙지 못하였거니와, 소인이 대감의 마음을 취택하온즉 대감께서도 저를 미리 없애고자 하시되 차바 거처치 못하오니, 미련한 소견으로는 선처할 모책이 길동을 먼저 없앤 후에 대감께 아뢰면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 대감께서도 어찌 할 수 업사와 마음을 아주 잊을까 하옵나이다."
 
부인이 빈축 왈,
 
"일은 그러하거니와 인정천리에 차마 할 바가 아니라.“
 
하시너, 초낭이 다시 어쭈오되,
 
“이 일이 여러가지 관계하오니, 하나는 국가를 위함이요, 둘은 대감의 환후를 위함이요, 셋은 홍씨 일문을 위함이오니, 어찌 적은 사정으로 우유부단하여 여러가지 큰 일을 생각지 아니하시다가 후회막급이 되오면 어리 하오리까?”
 
하며, 만단으로 부인과 대감의 장자를 달래니, 마지 못하여 허락하시거늘, 초낭이 암회하여 나와 특자라 하는 자객을 청하여 수말을 다 전하고 은자를 많이 주어 오늘 밤에 길동을 해하라 약속을 정하고, 다시 내당에 들어가 부인전에 수말을 여쭈오니, 부인이 들으시고 발을 구르시며 못내 차석하시더라.
 
이때의 길동은 나이 십일세라. 기골이 장대하고, 총맹이 절륜하며, 시서백가어를 무불통지하나, 대감 분부에 바깥 출입을 막으시매, 홀로 별당에 처하여 손오의 병서를 통리하여 귀신도 즉량치 못하는 술법이며 천지조화를 품어 풍운을 임의로 부리며, 육정육갑이 신장을 부려 신출귀몰지술을 통달하니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더라. 이날 밤 삼경이 된 후에 장차 서안을 물리치고 취침하려 하더니 문득 창 밖에서 까마귀 세 번 울고 서로 날아가거늘, 마음에 놀래 해혹하니, “까마귀 세 번 ‘객자와 객자와’ 하고 서로 날아가니 분명 자객이 오는지라. 어떤 사람이 나를 해코자 하는고? 암커나 방신지계를 하니라.” 하고, 방중에 팔진을 치고 각각 방위를 바꾸어, 남방의 이허중은 북방의 감중련에 옮기고, 동방 진하련은 서방 태상절에 옮기고, 건방의 건삼련은 손방 손하절에 옮기고, 곤방의 곤삼절은 간방 간상련에 옮겨, 그 가운데 풍운을 넣어 조화무궁페 벌리고 때를 기다리니다.
 
이때에 특자 비수를 들고 길동 거처하는 별당에 가서 몸을 숨기고 그 잠들기를 기다리더니, 난데없는 까마귀 창 밖에 와 울고 가거늘 마음에 크게 의심하여 왈,
 
“이 짐승이 무슨 앎이 있어 천기를 누설하는고? 길동은 실로 범상한 사람이 아니로다. 필연 타일에 크게 쓰리라.”
 
하고, 돌아가고자 하다가 은자에의 욕심이 몸을 생각치 못하여 이시한후에 몸을 날려 방중에 들어가니, 길동은 간 데 억고, 일진광풍이 일어나 뇌성벽력이 천지 진동하며 운무 자욱하여 동서를 분별치 못하며 좌우를 살펴보니 천봉만학이 중중첩첩하고, 대해 창일하여 정신을 수습치 못하는지라. 특자 내념에 헤아리되, “내 아까 분명 방중에 들어왔거늘 산은 어인 산이며, 물은 어인 물인고?” 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더니, 문득 옥적소리 들리거늘, 살펴보니 청의동자 백학을 타고 공중에 다니며 불러 왈,
 
“너는 어떠한 사람이관대 이 깊은 밤에 비수를 들고 누구를 해코자 하느냐?”
 
특자 대왈,
 
“네 분명 길동이로다. 나는 너의 부형의 명령을 받아 너를 취하러 왔노라.”
 
하고 비수를 들어 던지니, 문득 길동은 간 데 없고, 음풍이 대작하고 벽력이 진동하며, 중천에 살기 뿐이로다. 중심에 대겁하여 칼을 찾으며 왈,
 
"내 남의 재물을 욕심하다가 사지에 빠졌으니 수원수구하리요.“
 
하며, 길게 탄식하더니, 문득 이윽고 길동이 비수를 들고 공중에서 외쳐 왈,
 
“필부는 들으라. 네 재물을 탐하여 무죄한 인명을 살해코자 하니 이제 너를 살려두면 일후에 무죄한 사람이 허다히 상할지라. 어찌 살려 보내리요.”
 
한대, 특자 애걸 왈,
 
"과연 소인의 죄 아니오라 공잣댁 초낭자의 소위오니, 바라옵건데 가련한 인명을 구제하셔서 일후에 개과하게 하옵소서.“
 
길동이 더욱 분을 이기지 못하여 왈,
 
"너의 약관이 하늘에 사무쳐 오늘날 나의 손을 빌어 악한 유를 없애게 함이라.“
 
하고, 언파에 특자의 목을 쳐버리고, 신장을 호령하여 동대문 밖의 상녀를 잡아다가 수죄하여 왈,
 
"네 요망한 년으로 재상가에 출입하며 인명을 상해하니 네 죄를 네 아느냐?“
 
관상녀 제 집에서 자다가 풍운에 쌓이어 호호탕탕이 아무 데로 가는줄 모르더니, 문득 길동의 꾸짙는 소리를 듣고 애걸 왈,
 
"이는 다 소녀의 죄가 아니오라 초낭자의 가르침이오니 바라건대 인후하신 마음에 죄를 관서하옵소서.“
 
하거늘, 길동이 가로되,
 
"초낭자는 나의 의모라 의논치 못하려니와 너같은 악종을 내 어찌 살려 두리요. 후 사람을 징계하리라.“
 
하고. 칼을 들어 머리를 베어 특자외 주검한테 던지고, 분한 마음을 것잡지 못하여 바로 대감전에 나아가 이 변괴를 아뢰고 초낭을 베려하다가 홀연 생각 왈, “영인부아언정 무아부인이라.” 하고, 또 “내 일시 분으로 어찌 인륜을 끊으리요.” 하고, 바로 대감 침소에 나아가 정하에 엎드리더니, 이때 대감이 잠을 깨어 문 밖에 인적 있음을 괴히 여겨 창을 열고 보시니, 길동이 정하에 엎드렸거늘, 분부 왈,
 
“이제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아니하고 무슨 연고로 이러하느냐?”
 
길동이 체읍 대왈,
 
“가내에 흉한 변이 있사와 목숨을 도망하여 나가오니 대감전에 하직차로 왔나이다.”
 
대감이 상량하시되, “필연 무슨 곡절이 있도다.” 하시고 가로되,
 
“무슨 일인지 날이 새면 알려니와 급히 돌아가 자고 분부를 기다리라.”
 
하시기, 길동이 복지 주왈,
 
"소인이 이제로 집을 떠나가오니 대감 체후만복하옵소서. 소인이 다시 뵈올 기약이 망연하오이다.“
 
대감이 헤아리되, 길동은 범류 아니라 만류하여도 듣지 아니 할 줄 짐작하시고 가로되,
 
"네 이제 집을 떠나면 어디로 가느냐?“
 
길동이 부복 주왈,
 
"목숨을 도망하여 천지로 집을 삼고 나가오니 어찌 정처 있사오리까마는 평생 원한이 가슴에 맺혀 설원할 날이 없사오니 더욱 설워하나이다.“
 
하거늘. 대감이 위로 왈,
 
"오늘로부터 네 원을 풀어주는 것이니 네 나가 사방에 주류할지라도 부디 죄를 지어 부형에게 환을 끼치지 말고 쉬이 돌아와 나의 마음을 위로하라. 여러 말 아니하니 부디 겸염하여라.“
 
하시니. 길동이 일어나 다시 절하고 주왈,
 
"부친이 오늘날 적년소원을 풀어 주시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사올지라. 황공무지오니 복망 아버님은 만수무강하소서.“
 
하며, 인하여 하직을 구하고 나와 바로 그 모친 침실에 들어가 어미를 대하여 가로되,
 
"소자가 이제 목숨을 도망하여 집을 떠나오니 모친은 불효자를 생각지 마시고 계시오면 소자 돌아와 뵈올 날이 있사오니 달리 염려 마옵시고 삼가 조심하여 천금귀체를 보중하옵소서.“
 
하고, 초낭의 작변하던 일을 종두지미하여 낱낱이 설화하니, 그 어미 그 변괴를 자세히 들은 후에 길동을 만류치 못할 줄 알고 인하여 탄식 왈,
 
“네 이제 나가 잠간 화를 피하고 어미 낮을 보아 쉬이 돌아와 나로 하여금 실망하는 병이 업게 하라.”
 
하며 못내 설워하니, 길동이 무수히 위로하며 눈물을 거두어 하직하고 문 밖에 나서니 광대한 천지간에 한 몸이 용납할 곳이 없는지라. 탄식으로 정처없이 가니라.
 
이때에 부인이 자객을 길동에게 보낸 줄 아시고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수히 탄식하시니, 장자 길현이 위로 왈,
 
"소자도 능히 마지 못하온 일이오니 저 죽은 후에라도 어찌 한이 없사오리까? 제 어미를 더욱 후대하여 일생을 편케 하옵고, 제의 시신을 후장하여 야처한 마음을 만분지일이나 덜을까 하나이다.“
 
하고 밤을 지내더, 이튿날 평명에 초낭이 별당에 날이 밝도록 소식 없음을 괴히 여겨 사람을 보내 탐지하니, 길동은 간데 없고 목 없는 주검 둘이 방중에 거꾸러져 있거늘, 자세히 보니 특자와 관상녀라. 초낭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래어 급히 내당에 들외가 이 사연을 부인께 고하니, 부인이 대경하여 장자 길현을 볼러 길동을 찾으되 종시 거처를 알지 못하는지라. 대감을 청하여 수말을 아뢰며 죄를 청하니, 대감이 대책왈,
 
"가내에 이런 변고를 지으니 화 장차 무궁할지라. 간밤에 길동이 집을 떠나노라 하고 하직을 고하기로 무슨 일인지 몰랐더니 원래 이일이 있음을 어찌 알았으리요.“
 
하고, 초낭을 대책 왈,
 
"네 앞 순에 괴이한 말을 자아내기로 꾸짖어 물리치고 그같은 말을 다시 내지 말라 하였거늘, 네 종시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고 가내에 있어 이렇듯이 변을 지으니 죄를 의논컨대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어찌 내 안전에 두고 보리요.“
 
하시(고), 노복을 불러 두 주검을 남이 모르게 치우고 마음 둘 곳을 몰라 좌불안석하시더라.
 
이때에 길동이 집을 떠나 사방으로 주류하더니, 일일은 한 곳에 이르니 만첩산장이 하늘에 닿은 듯하고, 초목이 무성하여 동서를 분별치 못하는 중에 햇빛은 세양이 되고 인가 또한 없으니 진퇴유곡이라. 바야흐로 주저하더니, 한 곳을 바라보니 괴이한 표자 시냇물을 쫓아 떠오거늘, 인가 있는줄 짐작하고 시젓물을 쫓아 수리를 들어가니, 산천이 열린 곳에 수백 인가 즐비하거늘. 길동이 그 촌중에 들어가니, 한 곳에 수백 인이 모여 잔치를 배설하고 배반이 낭자한대 공론이 분운하더라.
 
원래 차촌은 적굴이라. 이날 마침 장수를 정하려 하고 공론이 분운하더니 길동 이 말을 듣고 내념에 해아리되, “내 지처없는 처지로 위연이 이 곳에 당하였으니 이는 나로하여금 하늘이 지시하심이로다. 몸을 녹림에 붙여 남아의 지기를 펴리라.”하고 좌중에 나아가 성명을 통하여 왈,
 
"나는 경성 홍승상의 아자로서 사람을 죽이고 망명도주하여 사방에 주류하옵더니, 오늘날 하늘이 지시하사 위연이 이 곳에 이르렀으니 녹림호걸의 으뜸 장수됨이 어려하노?“
 
하며 자청하니. 좌중제인이 이때 술이 취하여 바야흐로 공론 달난하더니, 불의에 난데없는 총각아이 들어와 자청하매 서로 돌아보며 꾸짖어 왈,
 
"우리 수백 인이 다 절인지력을 가졌으되 지금 두 가지 일을 행할이 없어 유예미결하거니와, 너는 어떠한 아이로서 감히 우리 연석에 돌입하여 언사 이렇듯이 괴망하뇨? 인명을 생각하여 살려보내니 급히 돌아가라.“
 
하고 등 밀어 내치거늘, 길동이 돌문 밖에 나와 큰 나무를 꺾어 글을 쓰되, “용이 얕은 물에 잠기어 있으니 어별이 침노하며, 범이 깊은 수풀을 잃으매 여우와 토끼의 조롱을 보는도다. 오래지 아니해서 풍운을 얻으면 그 변화 측량키 어려우리로다.”하였더니, 한 군사 그 글을 등서하여 좌중에 드리니, 상좌의 한 사람이 그 글을 보다가 여러 사람에게 청하여 왈,
 
"그 아이 거동이 비범할 뿐 아니라, 더우기 홍승상의 자제라 하니 수자를 청하여 그 재주를 시험한 후에 처치함이 해롭지 아니하다.“
 
하니, 좌중제인이 응락하여 즉시 길동을 청하여 좌상에 앉히고 이르되,
 
"즉금 우리 의논이 두 가지라. 하나는 이 앞의 초부석이라 하는 돌이 있으니 중이 천여근이라 좌중에서는 용이케 들 사람이 없고, 둘은 경상도 합천 해인사에 누거만재이나 수도중이 수천 명이라 그 절을 치고 재물을 앗을 모책이 없는지라. 수자가 이 두 가지틀 능히 행하면 오늘부터 장수를 봉하리라.“
 
하거늘, 길동이 이 말을 듣고 웃어 왈,
 
"대장부 세상에 처하매 마땅히 상통천문하고, 부찰지리하고. 중찰인의할지라. 어찌 이만 일을 겁하리요.“
 
하고, 즉시 팔을 걷고 그 곳에 나아가 초부석을 들어 팔 위에 얹고 수 십 보를 행하다가 도로 그 자리에 놓으되 일분 겨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모든 사람이 대찬 왈,
 
"실로 장사로다!“
 
하고, 상좌에 앉히고 술을 권하며 장수라 일컬어 치하 분분하는지라. 길동이 군사를 명하여 백마를 잡아 피를 마셔 맹세할새 제군에게 호령 왈,
 
"우리 수백 인이 오늘부터 사생고락을 한가지로 할지니 만일 약속을 배반하고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시행하리라.“
 
하니, 제군이 일시에 청령하고 즐기더라. 수일 후에 제군에게 분부 왈,
 
"내 합천 해인사에 가 모책을 정하고 오리라.“
 
하고, 서동복색으로 나귀를 타고 종자 수인을 데리고 가니 완연한 재상의 자제이더라. 해인사에 노문하되, “경성 홍승상댁 자제 공부차로 오신다." 하니 사중 제승 노문을 듣고 의논하되, ”재상가 자제 절에 거처하시면 그 힘이 적지 아니하리로다." 하고 일시에 동구 밖에 맞아 문안하니, 길동이 혼연히 사중에 돌아가 좌정 후에 제승을 대하여 왈,
 
“내 들으니 네 절이 경성에 유명하기로 소문을 높이 듣고 먼 데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한 번 구경도 하고 공부도 하려하여 왔으니, 너희도 괴로히 생각지 말 뿐더러 사중에 머무는 잡일을 일체 물리치라. 내 아무 고을 아중에 가 본관을 보고 백미 이십 석을 보낼 것이 니 아무날 음식을 장만하라. 내 너회와 더불어 승속지분의를 버리고 동락한 후에 그날부터 공부하리라. "
 
하니, 제승이 황공 수명하더라. (법)당 사면으로 다니며 두루 살핀후에 돌아와 적군 수십인에게 백미 이십석을 보내며 왈,
 
"아무 아중에서 보내더라.“
 
이르니라. 제승이 어찌 대적의 흉계를 알리요. 행여 분부를 어길까 염려하여 그 백미로 즉시 음식을 장만하며, 일변 사중에 머무는 잡인을 다 보내니라. 기약한 날에 길동이 제적에게 분부하되,
 
"이제 해인사에 가 제승을 다 결박할 것이니 너희등이 근처에 매복하였다가 일시에 절에 들어와 재물을 수탐하여 가지고 나의 가르치는 대로 행하되 부디 영을 어기지 말라.“
 
하고, 장대한 하인 십여인을 거느리고 해인사로 향하니라.
 
이때 제승이 동구 밖에 나와 대후하는지라. 길동이 들어가 분부 왈,
 
"사중 제승이 노소없이 하나도 빠지지 말고 일제히 절 뒤 벽계로 모이라. 오늘은 너희와 함께 종일 포취하고 놀리라.“
 
하니, 중들이 먹기도 위할 뿐떠러 분부를 어기면 행여 죄 있을까 저어하여 일시에 수천 제승이 벽계로 모이니 사중은 통 비었는지라. 길동이 좌상에 앉고 제승을 차례로 앉힌 후에 각각 상을 받아 술도 권하며 즐기다가 이윽하여 식상을 드리거늘, 길동이 소매로부터 모래를 내어 입에 넣고 씹으니 돌깨지는 소리에 제승이 혼불부신하는지라.
 
길동이 대로 왈,
 
"내 너희로 더불어 승속지분의를 버리고 즐긴 후에 유하여 공부하렸더니 이 완만한 중놈들이 나를 수이 보고 음식의 부정함이 이 같으니 가히 통분한지라.“
 
데리고 갔던 하인을 호령하여, “제승을 일제히 곁박하라.” 재촉이 성화같은지라. 하인이 일시에 달려듈어 절승을 결박할새 어찌 일분 사정이 있으리요.
 
이때 제적이 동구 사면에 매복하였다가 이 기미를 탐지하고, 일사에 달려들어 고를 열고 수만금 재물을 제 것 가져가듯이 우마에 싣고 간들 사지를 요동치 못하는 중들이 어찌 금단하리오. 다만 입으로 원통하다 하는 소리 동중이 무너지는 듯 하더라.
 
이때 사중에 한 목공이 있어 이 중에 참여치 아니하고 절을 지키다가 난데없는 도적이 들어와 고를 열고 제 것 가져가듯이 하매, 급히 도망하여 합천 관가에 가 이 연유를 아뢰니, 합천원이 대경, 일변 관인을 보내며, 또 일변 관군을 조발하여 추종하는지라.
 
모든 도적이 재물을 싣고 우마를 몰아 나서며 멀리 바라보너 수천 군사 풍우같이 몰려오매 티끌이 하늘에 닿은 듯 하더라. 제적이 대겁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길동을 원망하는지라. 길동이 소왈,
 
'너회가 어찌 나의 비계를 알리요? 염려말고 남편 대로로 가라. 내 저 오는 관군을 북편 소로로 가게 하리라."
 
하고, 법당에 들어가 중의 장삼을 입고, 고갈을 쓰고, 높은 봉에 올라 관군을 불러 외쳐 왈,
 
"도적이 북편 소로로 갔사오니 이리로 오지 말고 그리 가 포착하옵소서.“
 
하며, 장삼 소매를 날려 북편 소로를 가리키니, 관군이 오다가 남로를 버리고 노승의 가리키는 대로 북편 소로로 가거늘, 길동이 내려와 축지법을 행하여 제적을 인도하여 동중으로 돌아오니 제적이 치하 분분하더라.
 
이때에 합천 원이 관군을 몰아 도적을 추종하되 자취를 보지 못하고 돌아오매 일읍이 소동하는지라. 이 연유를 감영에 장문하니, 감사 듣고 놀래어 각 읍에 발포하여 도적을 잡되 종시 형적을 몰라 도로 분주하더라.
 
일일은 길동이 제적을 불러 의논 왈,
 
"우리, 비록 녹림에 몸을 붙였으나 다 나라 백성이라. 세대로 나라 수토를 먹으니 만일 위태한 시절을 당하면 마땅히 시석을 무릅쓰고 민군을 도울지니 어찌 형법을 힘쓰지 아니하리요? 이제 군기를 도모할 모책이 있으니, 아무날 함경감영 남문 밖의 능소 근처에 시초를 수운하였다가 그날밤 삼경에 불을 놓으되 능소에는 범치 못하게 하라. 나는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기다려 감영에 틀어가 군기와 창고를 탈취하리라.“
 
약속을 정한 후에 기약한 날에 군사를 두 초로 나누어 한 초는 시초를 수운하라 하고, 또 한 초는 길동이 거느려 매복하였다가 삼경이 되매 능소 근처에 화광이 등천하였거늘, 길동이 급히 들어가 관문을 두드리며 소리하되,
 
"능소에 불이 났사오니 급히 구원하옵소서.“
 
감사 잠결에 대경하여 나화서 보니 과연 화광이 창천한지라. 하인을 거느리고 나가며, 일변 군사를 조발하니 성중이 물 끓는 듯 하는지라. 백성들도 다 능소에 가고 성중이 공허하여 노약자만 남았는지라. 길동이 제적을 거느리고 일시에 달려들어 창곡좌 군기를 도적하여 가지고 축지법을 행하여 순식에 동중으로 돌아오더라.
 
이때에 감사 불을 구하조 돌아오니 창곡 지킨 군사 아뢰되,
 
"도적이 들어와 창고를 열고 군기와 곡식을 도적하여 갔나이다.“
 
하거늘, 크게 놀래어 사방으로 군사를 발포하여 수탐하되 형적이 없는지라. 변괴인 줄 알고 이 연유를 나라에 주문하니라.
 
이날 밤에 길동이 동중에 돌아와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왈,
 
"우리 이제는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탈취치 말고, 악 읍 수령과 방백의 준민고택하는 재물을 노략하여 혹 불쌍한 백성을 구제할지니, 이 동호를 '활빈당'이라 하리라.“
 
하고, 또 가로되,
 
"함경감영에서 군기와 곡식을 잃고 우리 종적은 알지 못하매 저간에 애매한 사람이 허다히 상할지라. 내 몸의 죄를 지어 애매한 백성에게 돌려보내면 사람은 비록 알지 못하나 천벌이 두렵지 아니하랴?“
 
하고, 즉시 감영 북문에 써 붙이되,
 
"창곡좌 군기 도적하기는 활빈당 당수 홍길동이라.“
 
하였더라,
 
일일은 길동이 생각하되, “나외 팔자 무상하여 집을 도망하여 몸을 녹림호걸에 붙였으나 본심이 아니라. 입신양명하여 위로 임금을 도와 백성을 건지고 부모에게 영화를 뵈일 것이거늘, 남의 천대를 분히 여겨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 이로 인하여 큰 이름을 얻어 후세에 전하리라." 하고, 초인 일곱을 만들어 각각 군사 오십 명씩 영거하여 팔도에 분발할새, 다 각기 혼백을 붙여 조화무궁하니 군사 서로 의심하여 어느 도로 가는 것이 참 길동인 줄을 모르더라. 각각 팔도에 횡행하며 불의한 사람의 재물을 앗아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고, 수령의 뇌물을 탈취하고, 창고를 열어 백성을 진휼하니, 각유소동하여 창고지키는 군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키나, 길동의 수탄이 한 번 움직이면 풍우 대작하며 운무 자욱하여 천지를 분별치 못하니, 수직하는 군사 손을 묶인 듯이 금제치 못하는지라. 팔도에서 작란하되 명백히 외쳐 왈, "활빈당 장수 홍길동이라.“ 제명하며 횡행하되 뉘 능히 종적을 잡으리요? 팔도 감사 일시에 장문을 올리거늘, 전하 택견하시니 각각 하였으되,
 
"홍길동 대적이 능히 풍운을 부려 각읍에서 작란하여 아무 날은 이리 이리한 고을의 군기를 도적하고, 아무 때는 아무 고을의 창곡을 탈취하엿으되 이 도적의 자취를 잡지 못하여 황공한 사연을 앙달하나이다.“
 
하였거늘, 전하보시고 대경하사, 각도 장문 일자를 상고하시니 길동의 작란친 날이 동월 동일이라. 전하 크게 근심하사 일변 열읍에 하교하사, “무론 사서인하고 만일 이 도적을 잡으면 천금상을 하리라.” 조하시고, 팔도에 어사를 내리어, 민심을 안돈하고 이 도적을 잡으라 하시니라.
 
이 후로는 길동이 혹 쌍교를 타고 다니며 수령을 임의로 출척하고, 흑 창고를 통개하여 백성을 진휼하며, 죄인을 잡아 다스리며, 옥문을 열고 무죄한 사람은 방송하며 다니되, 각 읍이 종시 그 종적을 모르고 도리어 분주하여 일국이 흉흉한지라. 전하 진로하사 가라사대,
 
"이 어떠한 놈의 용맹이 한 날에 팔도에 다니며 이같이 작란하는고? 나라를 위하여 이 놈을 잡을 자가 없으니 가히 한심하도다!“
 
하시니, 계하에 한 사람이 출반 주왈,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일지병을 주시면 홍길동 대적을 잡아 전하의 근심을 덜리이다.”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곧 포도대장 이업이라. 전하 기특하게 여기사 정병 일천을 추시니, 이업이 즉시 궐하에 숙배하직하고 즉일 발행할새, 과천을 지나서는 각각 군사를 분발하여 약속을 정하되, 너희는 이러 이러한 곳으로 쫓아 아무날 문경으로 모이라.“ 하고, 미복으로 행하여 수일 후에 한 곳에 이르니, 날이 장차 저물거늘 주점에 들어 쉬더니, 이윽고 어떠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동자 수인을 거느리고 들어와 좌정 후에 성명과 거지를 통하고 담화하더니, 그 서생이 차탄 왈,
 
“보천지하가 막비왕토요, 솔토지민이 박비왕신이라. 이제 대적 홍길동이 팔도에 작란하여 민심을 요란케 하매 전하 진로하사 팔도에 행관하여 방곡에 지위하여 잡으라 하시되 종시 잡지 못하니 분완한 마음은 일국이 한가지라. 나같은 사람도 약간 용력이 있어 이 도적을 잡아 나라의 근심을 덜고자 하되 힘이 넉넉치 못하고 뒤를 도울 사람이 없으매 개탄이로이다.”
 
이업이 그 서생의 모양을 보고, 말을 들으매 진실로 의기남자라. 심내에 경복하여, 나아가 손을 잡고 왈,
 
“장하다, 이 말이여! 충의를 겸한 사람이로다! 내 비록 영렬하나 죽기로써 그대의 뒤를 도울 것이니 나와 함께 이 도적을 잡음이 어떠하뇨?”
 
한대, 그 소년이 또한 위사하고 왈,
 
“그대 말씀이 그러할진대 이제 나와 함께 가 재주를 시험하고 홍길동이 거처하는 데를 탐지하리라.”
 
하니, 이업이 응락하고 그 소년을 따라 함께 깊은 산중으로 가더니, 그 소년이 몸을 솟아 층암절벽 위에 올라 앉으며 왈,
 
"그대 힘을 다하여 나를 차면 그 용력을 가히 알리라.“
 
하거늘, 이업이 생전 기력을 다하여 그 소년을 차니, 그 소년이 몸을 돌아앉으며 왈,
 
"장사로다! 이만하면 홍길동 잡기를 염려치 아니하리로다! 그 도적이 지금 이 산중에 있으니 내 먼저 들어가 탐지하고 올 것이니 그대는 이곳에 있어 나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거늘, 이업이 허락하고 그 곳에 앉아 기다리더니, 이윽하여 형용이 기괴한 군사 수십인이 다 황건을 쓰고 오며 외쳐 왈,
 
"네 포도대장 이업이냐? 우리는 지부대왕의 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노라.“
 
하고, 일시에 달려들어 철쇄로 묶어 가니, 이업이 혼불부신하여 지하인 줄, 인간인 줄 모르고 가더니, 경각에 한 곳에 이르니 의회한 와가가 궁궐같은지라. 이업을 잡아 정하에 꿇리니 전상에서 수죄하는 소리나며 꾸짖어 왈,
 
"네 감히 활빈당 장수 홍길동을 수이 보고 잡기를 자당하느냐? 홍장군이 하늘의 명을 받아 팔도에 다니며 탐관오리와 비리로 취하는 놈의 재물을 앗아 불쌍한 백성을 구휼하거늘, 너회 놈이 나라를 속이고 임금에게 무고하여 옳은 사람들 해코자 하매, 지부에서 너같은 간사한 유를 잡아다가 다른 사람을 경계코자 하시니 한치 말라."
 
하고, 황건역사를 명하여 왈,
 
"이업을 잡아 풍도에 붙여 영불출세케 하라.“
 
하니, 이업이 머리를 땅에 두드리며 사죄 왈,
 
"과연 홍장군이 각 읍에 다니며 작란하여 민심을 소동케 하시매 국왕이 진로하시기로 신자의 도리에 앉아있지 못하여 발포차로 봉명하고 나왔사오니 인간의 무죄한 목숨을 안서하옵소서.“
 
무수히 애걸하니, 좌우 제인이며 전상에서 그 거동을 보고 크게 웃으며, 군사를 명하여 이업을 해박하여 전상에 앉히고 술을 권하며 왈,
 
"그대 머리를 들어 나를 보라. 나는 곧 주점에서 만났던 사람이요, 그 사람은 곧 홍길동이라. 그대같은 이는 수만 명이라도 나를 잡지 못할지라. 그대를 유인하여 이리 오기는 우리 위엄을 보이게 함이요, 일후에 그대와 같이 범람한 사람이 있거든 그대로 하여금 말리게 함이로다.“
 
하고, 또 두어 사람을 잡아들여 정하에 꿇리고 수죄 왈,
 
"너희들 일변 벨 것이로되 이미 이업 살려 돌려보내기로 너희도 방송하나니 돌아가 일후에는 다시 홍장군 잡기를 생의치 맡라.“
 
하니, 이업이 그제야 인간인 줄 아나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여 잠잠하더니, 이윽히 앉았다가 잠간 졸더니, 문득 깨달으니 사지를 요동치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지라. 죽도록 벗어나니 가죽 부대에 들어있는지라. 그 앞에 또 가죽 부대 둘이 달렸거늘, 끌러 보니 어젯밤에 함께 잡혀 갔던 사람이요, 문경으로 보낸 군사라. 이업이 어이없어 웃어 왈,
 
"나는 어떠한 소년에게 속아 이러이러 하였거니와 너희는 어떤 연고냐?"
 
물으니, 그 군사 서로 웃어 왈,
 
"소인 등은 아무 주점에서 자옵더니 어찌하여 이곳에 이른 줄 알지 못하나이다.“
 
하고, 사면을 살펴보니 장안 북악이더라. 이업 왈,
 
"허망한 밀이로다! 삼가 발구치 맡라.“
 
하더라.
 
이때에 길동의 수단이 신출귀몰하여 팔도에 횡행하되 능히 알 자가 없는지라. 수령의 간상을 적발하여 어사로 출도하여 선참후계하며,
 
각 읍 진공뇌물을 낱낱이 탈취하니 장안 백관이 구차막심하더라. 혹 초헌을 타고 장안 대로로 왕래하며 작란하니 상하 이민이 서로 의혹하여 괴이한 일이 많아 일국이 소동하는지라. 상이 크게 근심하시더니 우승상이 주왈,
 
“신이 듣자오니 도적 홍길동은 전 승상 홍모의 서자라 하오니, 이제 홍모를 가두시고, 그 형 이조판서 길현으로 경상감사를 보위하셔서 날을 정하여 그 서제 길동을 잡아 바치라 하오면, 제 아무리 불충무도한 놈이나 그 부형의 낯을 보아 스스로 잡힐까 하나이다.”
 
상이 이 말을 들으시고, 즉시 홍문을 금부에 가두라 하시고 길현을 패초하시니라.
 
이때에 홍승상이 길동이 한 번 떠난 후로 소식이 억어 거처를 모르며 내두에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하시더니, 천만몽매 밖에 길동이 나라 노럭지 되어 이렇듯 작란하매, 놀랜 마음에 어찌할 줄 모르고 이사연을 미리 나라에 폼하기도 어렵고 모르는 체 앉아있기도 어려워 일념에 병이 되어 침석에 놉고 일어나지 못하는지라. 장자 길현이 이조판서로 있더니 부친의 병세 위중하시매 말미를 청하여 집에 돌아와 띠를 끄르지 아니하고 병측에 모셔 조참에 나아가지 아니한지 이미 달이 넘은지라. 조정 사기를 알지 못하더니, 믄득 법관이 나와 조명을 전하고 승상을 전옥에 내리우고 판서를 패초하시는지라 일가 황황분주하더라.
 
판서 궐하에 나가 대죄하니, 상이 가라사대,
 
“경의 서제 길동이 나라의 도적이 되어 범람함이 이 같으니 그 죄를 의논하면 마땅히 연좌할 것이로되 고위안서하나니 이제로 경상도에 내려가 길동을 잡아 홍시 일문지화을 면케하라.”
 
하시니, 길현이 복지 주왈,
 
"천한 동생이 일찍 사람을 죽이고 도망하여 나갔사오매 종적을 모르옵더니 이렇듯 중죄를 지으니 신의 죄 마땅히 베임즉하오며, 신의 아비 나이 팔십에 천한 자식이 도적이 되었사오매 이로 병이 되어 사경에 있사오니, 복원 전하는 하해같은 은덕을 내리사 신의 아비로 하여금 집에 돌아가 조병하게 하시면 신이 내려가서 서제 길동을 잡아 전하에게 바치리다.“
 
하니, 상이 그 효성을 감동하, 홍모는 집으로 보내어 치병하라 하시고, 길현으로 경상감사를 보위하사 날을 정하여 주시니, 판서 황은 을 백배치사하고 경상도에 내려와 각 읍에 행관하여 방방곡곡에 방서를 붙여 길동을 찾으니, 그 방서에 하였으되,
 
"대법 사람이 복재지간에 나매 오륜 있으니 오륜중에 군부가 으뜸이라. 사람되고 오륜을 버리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니, 이제 너는 지혜와 식견이 범 사람보다 더하되 이를 모르니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요? 우리 세대로 국은을 입어 자자손손이 녹을 받으니 망극한 마음이 갈충보국하더니, 우리에게 미쳐서는 너로 말미암아 역명을 장차 어느 곳에 미칠 줄 모르게 되니 어찌 한심하다 뿐이며, 난신과 적자 어느 대에 없으리요마는 우리 문호에서 날 줄은 진실로 뜻하지 못하였도다. 너의 죄목을 전하 진로하시니 마땅히 극형을 행하실 것 이로되, 갈수록 성은이 망극하사 죄를 더하지 아니하시고 나를 명하사 너를 잡으라 하옵시너 망극한 마음 도리어 황공하며, 팔십 노친이 백수모년에 너로 하여금 주야 우려하시던 중에 네 이렇듯 변괴를 지어 죄를 나라에 얻으니 놀라신 마음에 병이 되어 이제 눕고 장차 일어나지 못하게 되시니, 부친 만일 너로 인하여 세상을 버리시면 네 살아서도 역명을 입고, 죽어 지하에 간들 천추만대에 볼충볼효지죄를 유전할지라. 또한 그 남은 우리 일문이 원통치 아니하랴? 네 어찌 넉넉한 소견으로 이를 생각지 못하느냐? 네 이 죄명을 가지고 세상에 용납할진대 사람은 비록 안서하나 소소한 천벌이 사정이 있으랴? 이제 마땅히 천명을 순수하여 조정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니 또 어찌하리요? 네 일찍 돌아오기를 바라노라.“
 
하였더라.
 
감사 도임 후에 공사를 폐하고, 전하의 근심과 부친의 병세를 염려하여 수심으로 날을 보내며 행여 길동이 올까 바라더니, 일일은 하인이 아뢰되,
 
“어떠한 소년이 밖에 와 통지한다.”
 
하거늘, 즉시 맞아 들이니, 그 사람이 섬 위에 엎드려 죄를 청하는지라. 감사 괴히 여겨 그 연고를 물으니 대왈,
 
“형장은 어찌 소제 길동을 모르시나이까?”
 
하거늘, 감사 경희중에 나가서 길동의 손을 잡고 이끌고 방에 들어와 좌우를 치우고 한숨지으며 왈,
 
“이 무상한 아이야. 네 어려서 집을 떠난 후에 이제야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도리어 슬프도다! 네 저러한 풍도와 재주로 어찌 이렇듯 불측한 일을 즐겨하여 부형의 은애를 끊케 하느냐? 향곡의 우미한 백성들도 임금에게 충성하고, 아비에게 효도할 줄 아는지라. 너는 성정이 총명하고 재주 높아 범인과 크게 다르니 마땅히 더욱 충효를 숭상할 사람으로서 몸을 그른 데 버려 충효를 당하여는 범인보다 못하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리요? 그 부형되는 자가 그같은 고명한 자제를 두었다 하여 심독회자부하더니 도리어 부형에게 근심을 끼치느냐? 네 이제 충의를 취하여 사지에 돌아가도 그 부형은 싫어하는 마음이 있을지라. 하물며 역명을 무릅쓰고 죽게 되니 그 부형의 마음이야 다시 어떠하다 하랴! 국법이 사정이 없으니 아무리 구원코자 하여도 어찌 못하고 위하여 서러워한들 무슨 효험이 있으랴? 너는 부형의 낯을 보아 죽기를 감심하고 왔으나 나는 두렵고 비척한 마음이 너 아니 본 때보다 더한지라! 너는 네 지은 죄니 하늘과 사람을 원망치 못하여도, 부친과 나는 목전의 너를 죽이는 줄로 명도를 탓할 뿐이라. 네 어찌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이렇들 범람한 죄를 지었느냐? 천추를 역수하여도 생리사별이 오늘밤에 비치 못하리로다!”
 
하니, 길동이 체읍 주왈,
 
“이 불초한 동생 길동이 본래 부형의 훈계를 듣지 말고자 함이 아니오라, 팔자 기박하여 천생됨을 평생 한일 뿐더러 가중에 시가하는 사람을 피하여 정처없이 다니다가 천망몽매 밖에 몸이 적당에 빠져 잠시 생애를 붙였더니 죄명이 이에 미치었사오니 명일에 소제 잡은 여유를 장계하옵고, 소제를 결박하여 나라에 바치옵소서.”
 
하며, 담화로 날을 새우고 평명에 감사 길동을 철쇄로 결박하여 보낼새 참연히 낯빛을 고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더라.
 
이때에 팔도에서 다 각기 길동을 잡았노라 장문하고 나라에 올리니 사람마다 의혹하고 도로 분주하여 구경하는 사람이 길이 메여 그 수를 알지 못하더라. 전하 친림하사 여덟 길동을 국문하실새, 여덟 길동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네가 무슨 길동이냐? 내가 참 길동이로다.“
 
하고, 서로 팔을 뽐내며 한데 어우러져 뒹구니 도리어 일장 가관이더라. 만조 제신이며 좌우 나장이 그 진위를 알지 못하는지라. 제신이 주왈,
 
“지자는 막여부오니 이제 홍모를 패초하사 그 서자 길동을 알아들이라 하옵소서.”
 
상이 옳게 여기사 즉시 홍모를 부르시니 승상이 조명을 이어 복지하니, 상이 가라사대,
 
“경이 일찌기 한 길동을 두었다 하더니 이제 여덟이 되었으니 어떠한 여고인지 경이 자세히 가리어 형소를 착란케 말라.”
 
하시니, 승상이 체읍 주왈,
 
“신이 행실을 지키지 못하여 천첩을 가까이 한 죄로 천한 자식을 두어 전하의 근심이 되옵고 조정이 분운하오니, 신의 죄 만 번 죽어도 마땅하오이다.”
 
하며, 백수에 눈물이 이음차 길동을 꾸짖어 왈,
 
“네 아무리 불충불효한 놈이라도 위로 성상이 친림하시고, 버금 아래로 아비 있거늘, 지척 천위하에 군부를 기롱하니 불측한 죄 더욱 큰지라. 빨리 형벌에 나아가 천명을 순수하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네 목전에 내 먼저 죽어 성상의 진로하시는 마음을 만분지일이라도 덜으리라.”
 
하며 주왈,
 
“신의 천자 길동은 왼 편 다리에 붉은 점 일곱이 있사오니 이를 증험하여 적발하옵소서.”
 
하니, 여덟 길동이 일시에 다리를 걷고 일곱 점을 서로 자랑하는지라. 승상이. 그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우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인하여 기절하거늘, 상이 놀래시사 급히 좌우를 명하여 구원하시되 회생할 길이 없더니, 여덟 길동이 자기 낭중에서 대추같은 환약 두 개씩 내어 서로 다투어 승상의 입에 넣으니 이시한 후에 회생하는지라. 여덟 길동이 울며 아뢰되,
 
"신의 팔자 무상하여 홍모의 천비의 배를 빌어 낳사오매, 아비와 형을 임의로 부르지 못하옵고, 겸하여 가중에 시기하는 자가 있사와 보전치 못하오매, 몸을 산림에 붙여 초목과 함께 늙자 하였더니, 하늘이 밉게 여기사 적당에 빠졌사오나, 일찌기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취한 바 없고 수령의 뇌물과 불의한 놈의 재물을 앗아 먹고, 혹간에 나라 곡식을 도적하였사오나 군부가 일체오니 자식이 아비것 먹기로 도적이라 하오리까? 어린 자식이 어미 젖 먹는 일체로소이다. 이는 도무지 조정 소인이 천총을 가리워 무소한 죄요, 신의 죄는 아니로소이다.“
 
상이 진로하사 꾸짖어 가라사대,
 
"네 무고한 재물은 취치 아니했다 하면, 합천사 중을 속이고 그 재물을 도적하고, 또 능소에 불을 놓고 군기를 도적하니, 이만 큰 죄 또 어디 있느냐?"
 
길동 등이 복주 왈,
 
"불도라 하옵는 것이 세상을 속이고 백성을 혹하게 하여, 갈지 아니하고 백성의 곡식을 취하며, 짜지 아니하고 백성의 의복을 속여 부모의 발부를 상하여 오랑캐 모양을 숭상하며, 군부를 버리고 부세를 도망하오니 이에 더한 불의지사 없사오며, 군기를 가져가옵기는 신 등이 산중에 처하여 병법을 익히다가 만일 난세를 당하옵거든 시석을 무릅써 임금을 도와 태평을 이루고자 함이오며, 불을 놓으되 능소에는 아니가게하였사오며, 신의 아비 세대로 국록을 받자와 갈충보국하여 성은을 만분지일이라도 갚지 못할까 하옵거늘 신이 어찌 외람되이 범람한 마음을 두오리까? 죄를 의논하여도 죽기에 가지 아니할 터이로되, 전하께서 조신의 무소를 들으시고 이렇듯이 진로하시니 신이 형벌을 기다기지 아니하옵고 먼저 스스로 죽사오니 노를 더옵소서.“
 
하고, 여덟 길동이 한데 어우러져 죽는지라. 좌우 괴히 여겨 자세히 보니 참 길동은 간데없고 초인 일곱 뿐이더라. 상이 길동의 기망한 죄를 더욱 노하사, 경상감사에게 조서를 내리어 길동 잡기를 더욱 재촉하시는지라.
 
이때에 경상감사 길동을 잡아 올리고 심회 둘 곳이 없어 공사를 전폐하고 경사 소식을 기다리더니, 문득 교지를 내렸거늘, 북귈읔 향하여 사배 후에 택견하니, 교지에 가라사대,
 
"길동을 잡지 아니하고 초인을 보내어 형부를 착란케 하니 허망기군지죄를 면치 못할지라. 아직 죄를 의논치 아니하나니 십일 내로 길동을 잡으라.“
 
하시고 사의 엄절한지라. 감사 황공무지하여 사방에 지위하고 길동을 찾더니, 일일은 월야를 당하여 난간에 비겼더니, 선화당 들보 위에서 한 소년이 내려와 복지재배하거늘, 자세히 보너 이 곧 길동이라. 감사 꾸짖어 왈,
 
“네 갈수록 죄를 키워 구태여 화를 일문에 끼치고자 하느냐? 즉금 나라에서 엄명이 막중하시니 너는 나를 원치 말고 일찍 천명을 순수하라.”
 
길동이 부복 대왈,
 
"형장은 염려치 마시고 명일 소제를 잡아 보내시되, 장교 중에 부모와 처자 없는 자를 가리어 소제를 압영하시면 좋은 모책이 있나이다.“
 
감사 그 연고를 알고자 한대 길동이 대답치 아니하니, 감사 그 소견을 알지 못하나 장차를 제 말과 같이 별택하고 길동을 영솔하여 경사로 올려 보내니라. 조정에서 길동이 잡히어 온다는 말을 듣고 도감포수 수백을 남대문에 매복하여 왈,
 
"길동이 문 안에 들거든 일시에 총을 놓아 잡으라.“
 
분부하니라.
 
이때에 길동이 풍우같이 잡히어 오더니 어찌 이 기미를 모르리요. 동작리를 건너며 '비우자‘ 셋을 써 공중에 날리고 오더니, 길동이 남대문 안에 드니 좌우의 포수 일시에 총을 놓으되 총구에 물이 가득하여 할 수 없이 설계치 못하니라. 길동이 궐문 밖에 다달아 영거한 장차를 돌아보하 왈,
 
“너회 나를 영거하여 이곳까지 왔으니 그 죄 죽기는 아니하리라.”
 
하고, 몸을 날려 수레 아래 내려 완완히 걸어 가는지라. 오군문 기병이 말을 달려 길동을 쏘려 하되, 길동은 한양으로 가고 말은 아무리 채쳐 몬들 축지하는 법을 어찌 하리요. 만성 인민이 그 신기한 수단을 측량할 이 없더라. 이날 사문에 글을 써 붙였으되,
 
“흥길동의 평생소원이 병조판서이오니 전하 하해같은 은택을 드리우사 소신으로 병조판서 유지를 주시면 신이 스스로 잡히오리다.”
 
하였더라. 이 사연을 묘당에서 의논할새, 혹자는 "저의 원을 풀어주어 백성의 마음을 안돈하자." 하고. 혹자는 왈, “제 무도불충한 도적으로 나라에 척촌지공은 새로이 만민을 소동케 하고 성상의 근심을 끼치는 놈을 어찌 일국 대사마를 주리요?” 하여 의논이 분운하여 결단치 못하였더니, 일일은 동대문 밖의 유벽처에 가서 육갑신장을 호령하여, "진세를 이루라.“ 하니, 이윽고 두 집사 공중에서 내려와 국궁하고 좌우에 서니, 난데없는 천병만마 아무 곳으로부터 오는 줄 모르되, 일시에 진을 이루고 진중에 황금단을 삼층으로 묻고 길동을 단상에 모시니, 군용이 정제하고 위엄이 추상같더라. 황건역사를 호령하여, "조정에서 길동을 참소하는 자의 심복을 잡아 들이라.”하니, 신장이 이 영을 듣고 이윽한 후에 십여 인명을 철쇄로 결박하여 들이니, 비컨대, 소리개가 병아리 채오는 모양이더라. 단하에 꿇리고 수죄 왈,
 
“너희는 조정의 좀이 되어 나라를 속여 구태어 홍길동 장군을 해코자 하니 그 죄 마땅히 벨 것이로되 인명이 가긍하기로 안서하노라.”
 
하고, 각각 군문 곤장 삼십도씩 쳐 내치니 겨우 죽기를 면한지라. 길동이 또 한 신장을 분부 왈,
 
“내 몸이 조정에 처하여 법을 잡았으면 먼저 불법을 없애어 각도 사찰을 훼패하렸더니, 이제 오래지 아니하여 조선국을 떠날지라. 그러하나 부모국이라 만리타국에 있어도 잊지 못할지라. 이제로 각 사에 가 혹세무민하는 중놈을 일제히 잡아고고, 또한 재상가의 자식이 세를 끼고 고잔한 백성을 속여 재물을 취하고, 불의한 일이 많으며 마음이 교만하되 구중이 깊어 천일이 복분에 비추오지 못하고, 간신이 나라의 좀이 되어 성상의 총명을 가리우니 가히 한심한 일이 허다한지라. 장안의 호당지도를 낱낱이 잡아 들이라.”
 
하니, 산장 이 명을 듣고 공중으로 날아 가더니,
 
이시한 후에 중놈 백여 명과 경화자재 십여 인을 잡아 들이는지라. 길동이 위엄을 베풀고 호령을 높혀 각각 수죄 왈,
 
“너희는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할 터이로되, 내 몸이 나라의 조명을 받아 국법을 잡은 바 아니기로 고위 안서하거니와, 일후에 만일 고치지 아니하면 너희 비록 수만리 밖에 있어도 잡아다가 베리라.”
 
하고, 엄형 일차에 진문 밖에 내치니라. 길동이 우양을 잡아 군사를 호궤하고, 징용을 정제하여 훤화를 금단하니, 창천만리에 백일이 고요하고, 팔진 풍운에 호령이 엄숙한지라. 길동이 술을 내어 반취한 후에 칼을 잡아 춤을 추니, 검광이 분분하여 햇빛을 희롱하고, 무수는 표표하여 공중에 날리는지라. 일지석의라. 진세를 파하여 신장을 각각 돌려보내고, 몸을 날려 활빈당 처소로 돌아 오니라.
 
이 후로는 다시 길동을 잡는 영이 급하되 종적을 보지 못하고, 길동은 적군을 보내어 팔도에서 장안으로 가는 뇌물을 앗아 먹으며, 불상한 백성이 있으면 창곡을 내어 진휼하며 신출귀몰하는 재주를 사람은 측량치 못하더라. 전하 근심하사 탄왈,
 
“이 놈의 재주는 인력으로 잡지 못할지라. 민심이 이렇듯 요동하고 그 인재 기특한지라. 차라리 그 재주를 취하여 조정에 두리다.”
 
하시고, 병조판서 직첩을 내어 걸고 길동을 부르시니, 길동이 초헌을 타고 하인 수입명을 거느리고 동대문으로부터 오거늘, 병조 하인이 옹위하여 궐하에 이르러 숙배하고 가로되,
 
“천은이 망극하여 분외의 은택에 대사마에 오르오니 망극하온 신의 마음이 성은을 만분지일도 갚지 못할까 황공하나이다.”
 
하고 돌아가더니, 이 후로는 길동이 다시 작란하는 일이 없는지라. 각 도의 길동 잡는 영을 거두시더라.
 
삼년 후에 상이 월야를 당하사 환자를 거느리시고 월색을 구경하시더니, 하늘로서 한 선관이 오운을 타고 내려와 복지하는지라. 상이 놀라사 가라사대,
 
“귀인이 누지에 임하여 무슨 허물을 이르고자 하나이까?”
 
하신대, 그 사람이 주왈,
 
“소신은 전 병조판서 홍길동이로소이다.”
 
상이 놀라사 길동의 손을 잡으시고 왈,
 
“그대 그간은 어디를 갔었느냐?”
 
길동이 주왈,
 
“산중에 있사옵더니, 이제는 조선을 떠나 다시 전하 뵈올 날이 없사오매 하직차로 왔사오며, 전하는 넓으신 덕택에 정조 삼천 석만 주시면 수천 인명이 살아나겠사오니 성은을 바라나이다.”
 
상이 허락하시고 왈,
 
“네 고개를 들라. 얼굴을 보고자 하노라.”
 
길동이 얼굴을 들고 눈은 뜨지 아니하여 왈,
 
“신이 눈을 뜨오면 놀라실까 하여 뜨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이윽히 모셨다가 구름을 타고 가며 하직 왈,
 
“전하의 덕하에 정조 삼천 석을 주시니 성은이 갈수록 망극하신자라. 정조를 명일 서강으로 수운하여 주옵소서.”
 
하고 가는지라. 상이 공중을 향하여 이윽히 바라보시며 길동의 재주를 못내 차석하시고, 이튿날 대동당상에게 하교하사 “정조 삼천석을 서강으로 수운하라.” 하시니 조신이 연고를 알지 못하더라. 정조를 서강으로 수운할새, 강상으로부터 신척 둘이 떠오더니 정조 삼천 석을 배에 싶고 가며 길동이 대궐을 향하여 사배하직하고 아무 데로 가는 줄 모르더라.
 
이날 길동 삼천 적군을 거느려 망망대해로 떠나더니, 성도라 하는 도중에 이르러 창고를 지으며, 궁실을 지어 안돈하고, 군사로 하여금 농업을 힘쓰고, 각국에 왕래하여 물화를 통하며, 무예를 숭상하여 병법을 가르치니, 삼년지내에 군기 군량이 산같고, 군사 강하여 당적할 이 없더라.
 
일일은 길동이 제군에게 분부 왈,
 
“내 망당산에 들어가 살촉에 바를 약을 캐어 오리라.”
 
하고 떠나 낙천현에 이르니, 그 땅에 만석군 부자 있으되 성명은 백용이라. 남자 없고 일지기 딸을 두었으니, 덕용이 겸전하여 침어낙안지상이요, 폐월수화지태라. 고서를 섭렵하여 이두의 문장을 가졌으며, 색은 장강을 비웃고, 사덕은 태사를 봉받아 일언 일동이 예절이 있으니, 그 부모 극히 사랑하여 아름다운 사위를 구하더니, 나이 십팔에 당하여 일일은 풍우대작하여 지척을 분별치 못하게 하고, 뇌성벽력이 진동하더니, 백소저가 간 곳이 없는지라. 백용의 부처가 경황실색하여 천금을 흩어 사방으로 수탐하되 종적이 없는지라. 백용이 실성한 사람이 되어 거리로 다니며 방을 붙여 이르되,
 
“아무 사람이라도 자식의 거처를 알아 지시하면 인하여 사위를 삼고 가산을 반분하리라.”
 
하더라.
 
이때에 길동이 망당산에 들어가 약을 캐더니, 날이 저문 후에 방황하며 향할 바를 알지 못하더니, 문득 한 곳을 바라보니 불빛이 비치이며 여러 사람의 들레는 소리 나거늘, 반겨 그 곳으로 찾아가니 수백 무리 모여 뛰놀며 즐기는지라. 자세히 보니 사람은아니요 짐승이로되 모양은 사람같은지라. 심내에 의혹하여 몸을 감추오고 그 거동을 살피니, 원래 이 짐승은 이름이 을동이라. 길동 가만히 활을 잡아 그 상좌에 앉은 장수를 쏘니 정히 가슴에 맞는지라. 을동이 대경하여 크게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거늘, 길동이 맞쫓아 잡고자 하다가 밤이 이미 깊었으매 소나무를 의지하여 밤을 지내고, 익일 평명에 살펴보니 그 짐승이 피를 흘렸거늘, 피 흔적을 따라 수리를 들어가니 큰 집이 있으되 가장 웅장한지라. 문을 두드리니 군사 나와 길동을 보고왈
 
“그대 어떠한 사람이관대 이 곳에 왔느뇨?”
 
길동이 대왈,
 
“나는 조선국 사람으로 이 산중에 약캐러 왔다가 길을 잃고 이곳에 왔노라.”
 
하니, 그 짐승이 반기는 빛이 있어 가로되,
 
“그대 능히 의술을 아느냐? 우리 대왕이 새로이 미인을 얻고 어젯날 잔치하며 즐기더니, 난데없는 화살이 들어와 우리 대왕의 가슴을 맞혀 지금 사경에 있르렀는지라. 오늘날 다행히 그대를 만났으니 만일 의술을 알거든 우리 대왕의 병세를 회복케 하라.”
 
길동이 대왈,
 
“내 비록 편작의 재주는 없거니와 좀체 병에는 의심치 아니하노라.”
 
하니, 그 군사 크게 기뻐하여안으로 들어가더니, 이윽하여 청하거늘, 길동이 들어가 좌정 후에 그 장수 신음하여 왈,
 
“복의 명이 조모를 보전치 못하더니 천우신조하사 선생을 만나오니 선약을 가르쳐 잔명을 구제하옵소서.”
 
길동이 그 상처를 살피고 왈,
 
“이는 어렵지 아니한 병이라. 내게 좋은 약이있으니 한 번 먹으면 비단 상처에 이할 뿐 아니라, 백병이 소제하고 장생불사하리라.”
 
한 대, 을동이 대희 왈,
 
“복이 스스로 몸을 삼가지 못하여 자취지환을 당하여 명이 황천에 돌아가게 되었더니 천우신조하사 명의를 만났사오니, 선생은 급히 선약을 시험하소서.”
 
길동이 금낭을 열고 약 한 봉지를 내어 술에 타 주니 그 짐승이 받아 마시더니, 이윽고 몸을 뒤치며 소리를 크게 질러 왈,
 
“내가 너로 더불어 원수 지은 일이 없거든 무슨 일로 나를 해하여 죽이려 하느냐?”
 
하며, 제 동생 등을 불러 왈,
 
“천만몽매 외에 흉적을 만나 명을 끊기게 되니 너희 등은 이놈을 놓치지 말고 나의 원수를 갚으라.”
 
하고, 인하여 죽으니, 모든 율동이 일시에 칼을 들고 내달아 꾸짖어 왈,
 
“내 형을 무슨 죄로 죽이느냐? 내 칼을 받아라.”
 
하거늘, 길동이 냉소 왈,
 
“제 명이 그 뿐이라. 내 어찌 죽였으리요?”
 
한대, 을동이 대로하여 칼을 들어 길동을 치려 하거늘, 길동이 대적코자 하나 손에 척촌지검이 없어 사세 위급하매 몸을 날려 공중으로 달아나니, 을동이 본디 누만년 묵은 요귀라 풍운을 부리고 조화무궁한지라. 무수한 요괴 바람을 타고 올라오니, 길동이 할 수 없어 육정육갑을 부르니, 문득 공중으로부터 무수한 신장이 내려와 모든 을동을 결박하여 땅에 꿇리니, 길동이 그 놈의 잡은 칼을 앗아 무수한 을동을 다 베고, 바로 들어가 여자 삼인을 죽이려 하니, 그 여자 울며 왈,
 
“첩 등은 요귀 아니요, 불행하게 요귀에게 잡혀 와 죽고자 하나 틈을 얻지 못하여 죽지 못하였나이다.”
 
길동이 그 여자의 성명을 물으니, 하나는 낙천현 백용의 여자요, 또 두 여자 정통 양인의 여자라. 길동이 세 여자를 데리고 돌아와 백용을 찾아 이 일을 설화하니, 백용이 평생 사랑하던 여자를 찾으매 만심환희하여 천금으로 대연을 배설하고, 향당을 모아 홍생으로 사위를 삼으니, 인인이 칭찬하는 소리 진동하더라. 또 정통 양인이 홍생을 청하여 왈,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각각 여자로 시첩을 허하나이다.”
 
길동이 나이 이십이 되도록 봉황의 쌍유를 모르다가 일조에 삼부인숙녀를 만나 친근하니 은정이 교칠하여 비할 데 없더라. 백용 부처 사랑함을 이기지 못하더라. 인하여 길동이 삼 부인과 백용 부처이며 일가제족을 다 거느리고 제도로 들어가니, 모든 군사 강변에 나와 맞아 원로에 평안히 행차하심을 위로하고, 호위하여 제도중에 들어와 대연을 배설하고 즐기더라.
 
세월이 여류하여 제도에 들어온 지 거의 삼 년이라. 일일은 길동이 월색을 사랑하여 월하에 배회하더니, 문득 천문을 살피고 그 부친 졸하실 줄 알고 길게 통곡하니, 백씨 문왈,
 
“낭군이 평생 슬퍼하심이 없더니 오늘 무슨 일로 낙루하시나이까?”
 
길동이 탄식 왈,
 
“나는 천지간 불효자라. 나는 본디 이 곳 사람이 아니라, 조선국 홍승상의 천첩소생이라. 집안의 천대 자심하고, 조정에도 참여치 못하매, 장부 울회를 참지 못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이곳에 와 은신하였으나 부모의 기후를 사모하더니, 오늘날 천문을 살피니 부친의 유명하신 명이 불구에 세상을 이별하실지라. 내 몸이 만리 외에 있어 미처 득달치 못하게 되니 생전의 부친 안전에 뵙지 못하게 되오매 그것을 슬퍼하노라.”
 
백씨 듣고 내심에 탄복 왈, “그 근본을 감추지 아니하니 장부로다!”
 
하고, 재삼 위로하더라.
 
이때에 길동이 군사를 거느리고 일봉산에 들어가 산기를 살펴 명당을 정하고, 날을 가리어 역사를 시작하여 좌우 산곡과 분묘를 능과 같이 하고 돌아와 모든 군사를 불러 왈,
 
“모월 모일 대선 한척을 준비하여 조선 서강에 와 기다리라.”하고,
 
“부모를 모셔 올 것이니 미리 알아 거행하라.”
 
한대, 모든 군사 청령하고 물러가 거행하니라. 이날 길동이 백씨와 정통 양인을 하직하고 소선 일척을 재촉하여 조선으로 향하니라.
 
각설, 이때에 승상이 연장 구십에 졸연 득병하여 추구월 망일 더욱 중하여 부인과 장자 길현을 불러 가로되,
 
“내 나이 이제 구십이라 이제 죽은들 무슨 한이 있으리요마는, 길동이 비록 천첩소생이나 또한 나의 골육이라. 한 번 문외에 나가매 존망을 알지 못하고 임종에 상면치 못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나 죽은 후이라도 길동의 모를 대접하여 편케 하며, 부디 후회를 생각하여 만일 길동이 들어오거든 천비소생으로 알지 말고 동복형제같이하여 부모의 유언을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길동의 모를 불러 가까이 앉으라 하여 손을 잡고 눈물를 흘려 왈,
 
“내 너를 잊지 못함은 길동이 나간 후에 소식이 돈절하여 사생존망을 모르니 내 마음에 이같이 사념이 간절하거든 네 마음이야 더욱 측량하랴? 길동은 녹녹한 인물이 아니라. 만일 살아있으면 너를 저버릴 바 없으리라. 부디 몸을 가볍게 버리지 말고 안보하여 좋게 지내라. 내 황천에 돌아가도 눈을 감지 못하리로다.”
 
하시고, 인하여 별세하시니, 부인이 기절하시고, 좌우 다 망극하여 곡성이 진동하더라. 길현이 슬픈 마음을 적제치 못하여 눈물이 비오듯하며, 부인을 붙들어 위로하여 진정하신 후에 초상등절을 예로써 극진히 차릴새, 길동의 모는 더욱 망극 애통하니 그 정상이 잔잉하여 차마 보지 못하더라. 인하여 졸곡 후에 명산지지를 구하여 안장하려 하고 각처에 사람을 놓아 여러 지관을 데리고 산지를 사방으로 구하되 마땅한 곳이 없어 근심하더니, 이때에 길동이 서강에 다달아 배에서 내려 승상댁에 이르러 바로 승상 영위전에 들어가 복지통곡하니, 상인이 자세히 보니 이 곧 길동이라. 대성통곡 후에 길동을 데리고 바로 내당에 들어가 부인께 고하니, 부인이 대경대회하여 길동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왈,
 
“네 어려서 집을 떠나 이제야 들어오니 석사를 생각하면 도리어 참 괴한지라. 그러나 네 그사이 삼사년은 종적을 아주 끊어 어디로 갔었더나? 대감이 임종시 말씀이 이러이러 하시고 너를 잊지 못하며 돌아가시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요?”
 
하시고, 그 어미를 부르시니, 그 모 길동 온 줄 알고 급히 들어와 모자 서로 대하니 흐르는 눈물을 서로 금치 못하더라. 길동이 부인과 그 모친을 위로한 후 그 형장을 대하여 왈,
 
“소제 그간은 산중에 은거하여 지리를 잠심하여 대감의 말년유택을 정한 곳이 있사옵더니, 알지 못하겠구나! 이미 소점이 있사옵나이까?”
 
그 형이 이 말을 듣고 더욱 반겨 아직 정하지 못한 말을 설화하고, 제인이 모여 밤이 새도록 정회를 풀고, 이틑날 길동이 그 형을 모시고 한 곳에 이르러 가르켜 왈,
 
“이곳이 소제의 정한 땅이로소이다.”
 
길현이 사면을 살펴보니, 중중한 석각이 험악하고, 누누한 고총이 수없는지라. 심내에 불합하여 왈,
 
“소제의 높은 소견을 알지 못하되 내 마음은 이곳에 모실 생각이 없으니 다른 땅을 점복하라.”
 
길동이 거짓 탄식 왈,
 
“이땅이 비록 이러하오나 누대 장상지지어늘 형장의 소견이 불합하오니 개탄이로다!”
 
하고, 도끼를 들어 수척을 파하니, 오색 기운이 일며 청학 한쌍이 날아가는지라. 그 형이 이 거동을 보고 크게 뉘우쳐 길동의 손을 잡고 왈,
 
“우형의 소견 절어대지를 잃었으니 어찌 애닯지 아니하니요? 바라나니 다른 땅이 없느냐?”
 
길동이 가로되,
 
“이에서 한 곳이 있어도 길이 수천 리라 그것을 염려하나이다.”
 
길현이 왈,
 
“이제 수만리라도 부모의 백골이 평안할 곳이 있으면 그 원근을 취사치 아니하리라.”
 
한대, 길동이 함께 집에 돌아와 그 말씀을 설화하니, 부인이 못내 애달아 하시더라. 날을 가리어 대감 영위를 모시고 도중으로 향할새, 길동이 부인께 여쭈오되,
 
“소자 돌아와 모자지정을 다 펴지 못하옵고, 또 대감 영위에 조석공양이 난처하오니 어미와 함께 이번 길에 함께 하오면 좋을까 하나이다.”
 
부인이 허락하시거늘, 직일 발행하여 서강에 다다르니 제군이 대선 한척을 대후하였는지라. 상구를 배에 모신 후에 복태 노복을 다 물리치고 그 형장과 어미를 모셔 만경창파로 떠나가니 지향을 알지 못하더라. 수일 후에 도중에 이르러 상구를 청상에 모시고, 날을 가리어 일봉산에 올라 장례를 모실새, 산역하는 거동이 능묘같은지라. 그 형장이 너무 참람함을 놀라니, 길동 왈,
 
“형장은 의심치 마옵소서. 이 곳은 조선 사람이 출입하는 곳이 아니며 그 자식되는 자가 부모를 후장하여서 죄될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안장 후에 도중에 돌아와 수월 머물더니, 그 형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거늘, 길동을 길을 차릴새, 이별을 고하여 왈,
 
“형장을 다시 볼 날이 막연하온지라. 어미는 이미 이 곳에 왔사오니 모자 정리에 차마 떠나지 못하오며, 형장은 대감을 생전에 모셨사오니 한할 바가 없는지라. 사후 향화는 소제가 받들어 불효지죄를 만불지일이나마 덜까 하나이다.”
 
하고, 함께 산소에 올라 하작히고 내려와 길동의 모와 백씨를 이별할새, 피차에 다시 만남을 당부하고 못내 연연하더라. 소선 일척을 제촉하여 고국으로 향할새, 길동의 손을 잡고 왈,
 
“슬프다! 이별이 오랠지라. 소제는 나의 사정을 살펴 생전에 대감 산소를 다시 보게 하라.”
 
하며 하염없이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지라. 길동이 또한 눈물지며 왈,
 
“형장은 고국에 돌아가 부인을 모시고 만세무강하옵소서. 다시 모일 기약을 정치 못하오니, 남북 수천리에 나뉘어 강금의 이불이 차고, 척령의 나래 고단하매, 속절없이 북으로 가는 기러기를 탄식하며, 등으로 흐르는 물을 바랠 따름이오니, 생리사별을 당하여 그 정회는 피차 한가지라. 아무리 철석간장인들 차마 견디리요?”
 
하며, 두 줄 눈물이 말소리를 쫓아 떨어지니, 진실로 만고상심 한 마디라. 강수 위하여 소리를 그치고, 행운이 머무는 돗하여 차마 서로 떠나지 못하더라. 강잉하며 서로 위로하고, 배를 띄워 수월 만에 고국에 돌아와 모부인께 뵈옵고, 산처 사연이며 천후수말을 낱낱이 설화할새, 부인도 못내 차석하시더라.
 
차설, 길동이 그 형을 이별 후에 제군을 권하여 농업을 힘쓰고, 군법을 일삼으며, 그럭저럭 삼년초토를 지내매, 양식이 넉넉하고, 수만 군졸이 무예와 기보하는 법이 천하에 최강하더라. 근처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은 율도국이라. 중국을 섬기지 아니하고, 수십 대를 전자전손하여 덕화유행하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하거늘, 길동이 제군과 의논 왈,
 
“우리 어찌 이 도중만 지키어 세월을 보내리요?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각각 소견에 어떠하냐?”
 
제인이 즐겨 원치 아니할 이 없는지라. 즉시 택일하여 출사할새, 삼호걸로 선봉을 삼고, 김인수로 후장군을 삼고, 길동 스스로 대원수되어 중영을 총독하니, 기병이 오천이요, 보졸이 이만이라. 곰고함성은 강상이 진동하고, 기치검극은 일월을가리웠더라. 군사를 재촉하여 율도룩그로 향하니, 이른바 당할 자가 없어 단사호장으로 문을 열어 항복하는지라. 수월지간에 칠십여 성을 정하니 위엄이 일국에 진동하는지라. 도성 오십 리 밖에 진을 치고 율도왕에서 격서를 전하니 그 글에 하였으되,
 
“의병장 홍길동은 삼가 글월을 율도왕 좌하에 드리나니, 나라는 한 사람이 오래 지키지 못하는지라. 시고라 성탕은 하걸을 치고, 무왕은 상주를 내치시니, 다 백성을 위하여 난대를 평정하는 바라. 이제 의병 이십만을 거느려 칠십여성을 항복받고 이에 이르렀으니, 왕은 대세를 당할 듯하거든 자웅을 결단하고, 세궁하거든 일찍 항복하여 천명을 순수하라.”
 
하고, 다시 위로 왈,
 
“백성을 위하여 쉬 항서를 올리면 일방 봉작으로 사직을 망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이때에 율도왕이 불의에 이름없는 도적이 칠십여 주를 항복받으매, 향하는 곳 마다 당적치 못하고, 도성을 범하매 비록 지혜있는 신하라도 위하여 꾀하지 못하더니, 문득 격서를 들이매 만조제신이 아무러할 줄 모르고 장안이 진동하는지라. 제신이 의논 왈,
 
“이제 도적의 대세를 당치 못할지라. 싸우지 말고 도성을 굳게 지키고, 기병을 보내어 기 치중군량 수운하는 길을 막으면 적병이 나아와 싸움을 어찌 못하고, 또 물러갈 길이 없사오면, 수월이 못되어 적장의 머리를 성문에 달리이다.”
 
의논이 분운하더니, 수문장이 급고 왈,
 
“적병이 벌써 도성 십 리 밖에 진을 쳤나이다.”
 
율도왕이 대분하여 정병 십만을 조발하여 친히 대장이 되어 삼군을 재촉하여 호수를 막아 진을 치니라.
 
이때에 길동이 형지를 수탐한 후에 제장과 의논 왈,
 
“명일 오시면 율도왕을 사로잡을 것이니 군령을 어기지 말라.”
 
하고 제장을 분발할새, 삼호걸을 불러 왈,
 
“그대는 군사 오천을 거느려 양관 남편에 복병하였다가 호령을 기다려 이리이리 하라.”
 
하고, 후군장 김인수를 불러 왈,
 
“그대는 군사 이만을 거느려 이리이리 하라.”
 
하고, 또 좌선봉 맹춘을 불러 왈,
 
“그대는 철기 오천을 거느려 율왕과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왕을 인도하여 양관으로 달아나다가 추병이 양관 어귀에 들거든 이리이리 하라.”
 
하고, 대장기치와 백모황월을 주니라. 이튿날 평명에 맹춘이 진문을 크게 열고 대장기치를 진전에 세우고 외쳐 왈,
 
“무도한 율도왕이 감히 천명을 항거하니 나를 당적할 재주 있거든 빨리 나와 자웅을 결단하라.”
 
하며 진문에 치돌하며 재주를 비양하니, 적진 선봉 한석이 응성출마 왈,
 
“너희는 어떠한 도적으로 천위를 모르고 태평시절을 분란케 하느냐? 오늘날 너희를 사로잡아 민심을 안돈하리라.”
 
하고, 언필에 상장이 합전하여 싸우더니, 수합이 못되어 맹춘의 칼이 빛나며 한석의 머리를 베어 들고 좌충우돌하여 왈,
 
“율왕은 무죄한 장졸을 상치 말고 쉬이 나와 항복하여 잔명을 보전하라.”
 
하니, 율왕이 선봉 패함을 보고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녹포운갑에 자금투구를 쓰고, 좌수에 방천극을 들고, 천리대완마를 재촉하여 진전에 나서며 왈,
 
“적장은 잔말 말고 나의 창을 받으라.”
 
하고, 급히 맹춘을 취하여 싸우니, 십여합에 맹춘이 패하여 말머리를 돌려 양관으로 향하니 율도왕이 꾸짖어 왈,
 
"적장은 달아 지 말고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말을 재촉하여 맹춘을 따라 양관으로 가더니, 적장이 골 어귀에 들며 군기를 버리고 산곡으로 달아나는지라. 율도왕이 무슨 간계있는가 의심하다가 왈,
 
“네 비록 간사한 꾀가 있으나 내 어찌 겁하리요?”
 
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급하 따르더니, 이때에 길동이 장대에서 보다가 율도왕이 양관 어귀에 듦을 알고, 신병 오천을 호령하여 대군과 합세하여 양관 어귀에 필잔을 쳐 돌아갈 길을 막으니라. 율도왕이 적장을 쫓아 골에 들매 방포소리 나며 사면복병이 합세하여 그 세 풍아같은지라. 율도왕 꾀에 빠진 줄 알고 세궁하여 군사를 돌려 나오더니, 양관 어귀에 미치니 길동의 대병이 길을 막이 진을 치고 항복하라 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는지라. 율도왕이 힘을 다하여 진문을 헤치고 들어가니, 문득 풍우대작하고, 뇌성벽력이 진동하며 지척을 분별치 못하여 군사 크게 어지러워 갈 바를 모르더니, 길동이 신병을 호령하여 적장과 군졸을 일시에 결박하였는지라. 율도왕이 아무러 할 줄 모르고 크게 놀래어 급히 헤진들 팔진을 어떻게 벗어나리요? 필마단창으로 동서를 모르고 횡행하더니, 길동이 제장을 호령하여 결박하라 하는 소리 추상같은지라. 율도왕이 사면을 살피니 군사 하나도 따르는 자가 없으매, 스스로 벗아나지 못할 줄 알고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자결하는지라. 길동이 삼군을 거느려 승전고를 울리며 본진으로 돌아와 군사를 호궤 후에 율도왕을 왕례로 장사하고, 삼군을 재촉하여 도성을 에워싸니, 율도왕의 장자 흉변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인하여 자결하니, 제신이 하릴없어 율도국 세수를 받들고 항복하는지라. 길동이 대군을 몰아 도성에 들어가 백성을 진무하고, 율도왕의 아들을 또한 왕례로 장사하고, 각 읍에 대사하고, 죄인을 다 방송하며, 창고를 열어 백성을 진휼하니, 일국이 그 덕을 치하 아니할 이 없더라.
 
날을 가리어 왕위에 직하고, 승상을 추존하여 태조왕이라 하고, 능호를 현덕능이라 하며, 모친을 왕대비로 봉하고, 백용으로 부원군을 봉하고, 백씨로 중전왕비로 봉하고, 정통 양인이로 정숙비를 봉하고, 삼호걸로 대사마 대장군을 봉하며 병마를 총독케 하고, 김인수로 청주절도사를 하시이고, 맹춘으로 부원수를 하시이고, 그 남은 제장은 차례로 상사하니 한 사람도 칭원할 이 없더라. 신왕이 등극 후에 시화연풍하고, 국태민안하여 사방에 일이 없고, 덕화대행하여 도불습유하더라.
 
태평으로 세월을 보내더니, 수십년 후에 대왕대비 승하하시니 시년 칠십삼이라. 왕이 못내 애훼하여 예절로 지내는 효성이 신민을 감동하시더라. 현덕능에 안장하니라. 왕이 잠자이녀를 두시니 장자 앙이 내부의 풍도 있는지라. 신민이 다 산두같이 우러르거늘, 장자로 태자를 봉하시고, 열읍에 대사하사 태평연을 배설하고 즐길새, 왕의시년이 칠십이라. 술을 내어 반취하신 후에 칼을 잡고 춤추며 노래하시니 왈,
 
“칼을 잡고 우수에 비겨서니
남명이 몇만리뇨.
대붕이 날아다니
부요풍이 이는도다.
춤추는 소매 바람을 따라 표표함이여,
우이 동편과 매복 서펀이로다.
풍진을 쓸어보리고 태평을 일삼으니
경운이 일어나고 경성이 비치는도다.
맹장이 사방을 지키었음이여,
도적이 지경을 엿보리 없도다.“
 
하였더라. 이날 왕위를 태자에게 전하시고 다시 각읍에 대사하니라.
 
도성 삼십리 밖에 월영산이 있으되, 예로부터 선인 득도한 자취 왕왕이 머물어, 갈홍의 연단하던 부엌이 있고, 마고의 승천하던 바위있어 기이한 화훼와 한가한 구름이 항상 머무는지라. 왕이 그 산수를 사랑하고 적송자를 따라 놀고자 하여, 그 산중에 삼간누각을 지어 백씨 중전으로 더불어 처하시며, 곡식을 오직 물리치고 천지정기를 마셔 선도를 배우는지라. 태자 왕위에 직하여 일삭에 세 번 거동하여 부왕과 모비전에 문후하시더라.
 
일일은 뇌성벽력이 천지 진동하며, 오색운무 월영산을 두르더니, 이윽하여 뇌성이 걷고 천지 명랑하며 선학소리 자자하더니, 대왕 모비 간 곳이 없는지라. 왕이 급히 월영산에 거동하여 보니 종적이 막연한지라. 망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사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호읍하시다라. 대왕이 양외를 현릉에 허장하니 사람이 다 이르기를, “우리 대왕은 선도를 닦아 백일승천하셨다.” 하더라.
 
왕이 백성을 사랑하사 덕화를 힘쓰니 일국이 태평하여 격양가를 일삼으니 성자신손이 계계승승하여 태평으로 지내고, 조선 홍승상댁 대부인이 말년에 졸하시니, 장차 길현이 예절을 극진히 하여 선산여록에 장례하고 삼년초토를 지낸 후, 조정에 집권하여 초입사에 한림학사 대간을 겸하고, 연속 승차하여 병조정랑에서 홍문관 교리 수찬을 겸하고, 연하여 승직하여 승상을 지내니라. 이렇듯이 발복하여 삼태육경을 지내니 영화 일국의 으뜸이나 매일 친산을 생각하고 동생을 보고자 하되 남북에 길이 갈리어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미재라! 길동의 행어사여! 쾌달한 장부로다. 비록 천생이나 적원을 풀어 버리고, 효우를 완전히 하여 신수를 쾌달하니 만고에 희한한 일이기로 후인이 알게한 바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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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봉사가 있으니,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하던 거족으로 명망이 자자하더니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여지고 어려서 눈을 못 보게 되니 시골에서 곤궁하게 지내었다.<br><br>도와주는 일가 친척도 없고 아울러 눈까지 멀고 보니 그 누구 하나 대접하는 이 없건마는 본래 양반의 후손으로서 행실이 청렴하고 정직하며 지조와 기개가 고상하여 일동일정을 경솔히 하지 아니하므로 그 동네의 눈뜬 사람은 모두 칭찬을 마지 아니하였다.<br><br>심봉사의 아내 곽씨 부인도 또한 현철하여 덕과 아름다움과 절개를 갖추었고, 예서와 시경 중에 본받을 대목은 모르는 것이 없고 제사를 받드는 법이나 손님을 대접하는 법을 비롯하여 동네 사람과 화목하고 가장을 공경하고 살림하는 솜씨며 무슨 일이고 못하는 것이 없이 다 잘하였다.<br><br>그러나 가세가 빈한하니 곽씨 부인은 몸을 아끼지 않고 품팔이를 했다. 삯바느질, 삯빨래, 삯길쌈, 삯마전, 염색일이며, 혼상대사에 음식 만들기, 술 빚기, 떡 찧기 하며, 일년 삼백예순 날을 잠시라도 놀지 아니하고 품을 팔아 모으는데, 푼을 모아 돈이 되면 돈을 모아 냥을 만들고, 냥을 모아 관이 되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실수없이 받아들여 춘추로서 시제와 집안 제사를 받드는 것이며, 앞 못 보는 가장을 공경하고 시중드는 것<br>이 한결같으니 가난과 병신은 조금도 허물됨이 없고 먼 마을 사람들까지도 부러워하고 칭찬하는 중에 재미나게 세월을 보내었다.<br><br>그러나 그같이 지내는 중에도 심학규의 가슴에는 한 가지 품은 억울한 한이 있으니, 슬하에 혈육이 하나도 없음이었다. 하루는 심봉사가 마누라를 곁에 불러 앉히고 말한다.<br><br>"여보 마누라, 거기 앉아 내 말 좀 들어 보오. 나는 편하다 하려니와 마누<br>라의 고생살이 도리어 불안하니 괴로운 일일랑 너무 하지 말고 사는 대로 삽시다. 그러나 내 마음에 매우 원통한 일 하나 있소. <br><br>우리 양주 이미 나이 사십이나 슬하에 혈육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조상의 향화를 끊게 되니 죽어 저승으로 돌아간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대할 것이며, 우리 양주 죽은 후에 장사치레와 소대상이며, <br><br>해마다 돌아오는 기제사에 뉘 있어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떠 놓겠소? 병신 자식일망정 남녀 간에 낳아 본다면 평생 한을 풀 듯하니 어찌하면 좋을는고 명산대천에 치성이나 들여 보오"<br><br>"지성껏 하오리다."<br>이렇게 대답하고 그날부터 품을 팔아 모은 재물로, 온갖 정성을 다들인다. <br>이렇게 치성을 다 지내니 그 어찌 공든 탑이 무너지며 힘든 나무 부러지랴.<br><br>갑자년 사월 초파일에 꿈 하나를 얻었는데 이상할 뿐 아니라 맹랑 기괴하였다. 천지가 명랑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오색 꽃구름이 피더니 선인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화관이요, 몸에는 하의(노을로 만들어진 옷)로다. 둥근 옥패를 그 몸에 차고 옥패 소리 쟁쟁하며, 계화 가지를 손에 들고 내려오더니 부인 앞에 재배하고 곁으로 와서, <br><br>"소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서왕모의 딸인데 상제께 죄를 받아 인간계로 정배되어 갈 바를 모르던 중 태상 노군과 후토 부인, 제불 보살 석가님이 댁으로 지시하기로 지금 찾아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br>하고 품에 와 안기기에 곽씨 부인이 놀라서 잠을 깨었다.<br><br>심봉사 내외가 꿈 이야기를 의논하니, 둘의 꿈이 똑같았다. 태몽인 줄 짐작하고 마음에 희한하여 못내 기쁘게 여기는데 그달부터 태기가 있으니 이는 신불의 힘인가 하늘의 도움인가? 아마도 부인의 정성이 지극하므로 역시 하늘이 감동하심이렷다.<br><br>하루는 해산할 기미가 있어 순산하기를 바랄 때 향기가 진동하며 꽃구름이 비끼더니 얼떨결에 아이를 낳으니 선녀같은 딸이다. <br>"아가 아가 내 딸이야! 아들 겸 내 딸이야!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어둥둥 내 딸이야! 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 내려왔나? 어둥둥 내 딸이야!"<br><br>심학규는 이같이 주야로 즐거워하는데 마음에서 우러나 이렇듯이 좋아 하였다. 슬프다, 세상사여. 슬픔과 즐거움에 수가 있고 죽고 삶에 명이 있는지라. 운수가 다하면 가련만 몸을 용서치 않는다. 뜻밖에 곽씨 부인에게 산후탈이 일어나 호흡을 헐떡이며 식음을 전폐하고 정신없이 앓는데,<br><br>"애고 머리야, 애고 허리야!"<br>하는 소리에 심봉사 겁을 먹고 의원을 찾아 약을 쓰며 경도 읽고 굿도 하여 백 가지로 서둘러도 죽기로 든 병이라 인력으로 어찌 구하리오?<br><br>심봉사는 기가 막혀 부인 곁에 앉아서 온 몸을 만져 보며 말했다. <br>"여보, 여보 마누라, 정신 차려 말을 하오. 식음을 전폐하니 속이 비어 어<br>찌하오. 삼신님께 탈이 되어 제석님이 탈이 났나? 도리없이 죽게 되었으니 이게 웬일이오?<br><br>만일 불행하여 마누라가 죽게 되면 눈 어두운 이놈의 팔자, 일가 친척 하나 없는 혈혈단신 외로운 이내 몸은 올 데 갈 데 없어지니 그도 또한 원통한데 강보에 싸인 딸아이는 어찌한단 말이오?"<br>곽씨 부인 생각하여 보니 스스로 아는 병세라 살아나지 못할 줄을 짐작하며 봉사에게,<br><br>"여보 서방님, 내 말씀 들어 보오. 우리 부부 같이 늙어 백년을 같이 살자 하였거늘 명한을 못 이기고 필경은 죽을 테니, 죽는 나는 서럽지 아니하나 장차로 가군의 신세 어찌하면 좋으리오. <br><br>내 평생 마음 먹기를 앞 못 보는 가장님을 내가 조심 아니하면 고생되기 쉽겠기로 더위 추위 비바람을 가리지 아니하고 동네방네 품을 팔아 밥도 받고 반찬 얻어 식은 밥은 내가 먹고 더운 밥은 가군 드려 곯지 않고 춥지 않게 극진 공경하였는데 천명이 이뿐인지 인연이 끊겼는지 도리없이 죽게 되었네. <br><br>내가 만일 죽게 되면 의복치레 뉘 거두며 조석공궤뉘라 할까? 사고무친 외로운 몸이니 의탁할 곳 전혀 없는지라, 지팡막대 거머잡고 더듬더듬 다니다가 도랑에 떨어지고 돌에도 발길 채어 넘어져 신세를 자탄하여 우는 모양이 눈으로 보는 듯하고 기한을 못 이기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밥 좀 주오!' <br>슬픈 소리가 귀에 쟁쟁이 들리는 듯하니 죽은 혼이 차마 어찌 듣고 보며, 밤낮없이 바라다가 사십 후에 낳은 자식 젖 한 번 못 먹이고 죽다니 무슨 일일고! 어미없는 어린것을 뉘 젖 먹여 길러내며, 춘하추동 사시절을 무엇 입혀 길러내리! 이 몸이 뜻밖에 죽게 되면 머나먼 황천길을 눈물이 가려 어찌 가며, 앞이 막혀 어찌 갈고! 여보시오 봉사님, 저 건너 김동지 댁에 돈 열 냥을 맡겼으니 그 돈일랑 찾아다가 내 죽은 초상에 쓰시고, 항아리어 넣은 양식 해산 쌀로 두었다가 못 먹고 죽어가니 장사나 치른 다음 양식으로 쓰시고, 진어사댁 관대 한 벌, 흉배에 수놓다가 끝내지 못하고 보에 싸 농 안에다 넣었으니 남의 귀중한 의복일랑 나 죽기 전에 보내시고, 뒷마을 귀덕 어미는 나와 친한 사람이니 내가 죽은 뒤에라도 어린아이 안고 가서 젖 좀 먹여 달라 하면 괄시는 아니하리다.<br><br>하늘이 도와 저 자식이 죽지 않고 살아나서 제 발로 걷거들랑 앞세우고 길을 물어 내 무덤에 찾아와서 '아가 아가, 이 무덤이 너의 모친 무덤이다'라고 또렷하게 가르쳐서 모녀 상봉 시켜 주오. <br><br>천명을 못 이겨 앞 못 보는 가장에게 어린 자식 떼쳐 두고 영이별로 돌아가니 가군의 귀하신 몸 애통하여 상치 말고 천만보중하소서. 이승에서 미진한 일 후생에서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살고 싶소."<br><br>유언하고 한숨 쉬며 돌아누워 어린 아이에게 낯을 대고 혀를 찬다.<br>"아차 내가 잊었구료. 이애 이름을 청이라 불러 주오. 이 애 주려고 만든 굴레 진 옥판 붉은 술에 진주 드림 붙여 달아 함 속에 넣었으니, 아기가 엎치락뒤치락하거들랑 나 본 듯이 씌워주오."<br><br>말을 마치매 딸꾹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그쳤다. 슬프다, 곽씨 부인은 이미 다시 이승 사람이 아니었다.<br>슬프다. 사람의 수명을 어찌 하늘이 돕지 못하는가! 심봉사는, <br>"애고 마누라, 참으로 죽었는가?"<br>가슴을 꽝꽝, 머리를 탕탕 치며 발을 동동 그르면서 울며 부르짖는다.<br><br>울다가 기가 막힌 심봉사는 머리를 방바닥에 부딪치며 몸부림치니 이리 덜컥 저리 덜컥, 치둥글 내리둥글 엎어져 슬피 통곡하니 이때 도화동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가 아니 슬퍼할리!<br><br>비록 가난한 집안의 초상이라도 동네가 힘을 모아 정성껏 차렸으니 상여 치레는 매우 현란하였다. 상두꾼을 두건, 제복, 행전까지 생포로 호사하게 차려 입고 상여를 얼메고 갈지자로 운구한다.<br><br>"댕그렁 댕그렁 어화 넘차 너호."<br>그때 심봉사는 어린아이 강보에 싸 귀덕 어미에게 맡겨두고, 제복을 얻어 입고 상여 뒤체를 거머잡으며 미친 듯 취한 듯 겨우 부축을 받아 나아간다.<br><br>"애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나도 갑세, 나와 가! <br>만 리라도 나와 가세! 어찌 그리 무정한가? 이제는 자식도 귀하지 않소. 얼어서도 죽을 테고, 굶어서도 죽을 것이니 나와 함께 갑세다."<br>"어화 넘차 너호!"<br><br>그럭저럭 건너가 안산으로 돌아 들어 양지바른 자리를 가려서 깊이 안정한 후에 평토제를 지내는데, 심봉사가 본래부터 맹인이 아니라 이십 후의 실명이라 머리 속에는 들어 있는 학식이 많으므로 원한이 사무치는 축문을 지어 몸소 읽는다.<br><br>"슬프다 부인이여! 이토록 요조한 숙녀를 맞아 좋을 때에 짝으로 삼고서 백년을 같이 늙자 하였거늘, 이제 갑자기 죽으니 부인의 혼백은 아주 갔노라. <br>젖먹이를 남겨 두고 영이별 하니 장차 내 무슨 수로 기를 수 있으리오?<br><br>돌아오지 못할 길을 부인이 떠나가니 어느 때고 다시는 오지 못하겠기에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무성한 언덕에 깊이 묻었으니 푸른 묏부리와 더불어 길이 쉴지어다. 생전에 듣던 음성과 모습이 아득히 멀어지니 슬프다!<br><br>이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리라. 백양나무 가지 밖으로 달이 지니 산이 적적하고 밤은 깊은데, 어디서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니 무슨 말씀이든 하소연한들 저승과 이승이 가로막혀 길이 다르니 그 뉘라서 위로할 수 있으리오? 후유! 주과와 포혜로 간략히 차려 놓았으니, 부인이여 부디 많이 먹고 돌아가 주소서."<br><br>심봉사는 부인을 매장하여 공산야월 쓸쓸한 곳에 혼자 두고 허둥지둥 돌아오니, 부엌 안은 쓸쓸하고 방안은 텅 비었는데 분향은 그저 피어 있었다. <br>휑뎅그렁한 빈 방안에 벗도 없이 혼자 앉아 온갖 슬픔을 짓씹고 있을 때 이웃집 귀덕 어미가 사람 없는 동안에 아기를 데려다 돌보아 주었다가 건너와 아기를 주고 가는지라,<br><br>심봉사는 이를 받아 품안에 안고서 지리산 갈가마귀 게 발 물어다 던진 듯이 혼자 우뚝 앉았으니 슬픔이 하늘에 사무치거늘 품안에 어린것은 자지러져 울어댄다.<br><br>그렁그렁 그날 밤을 넘기는데 아기는 젖 못 먹어 기진하니 심봉사는 어두운 눈이 더욱 침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동녘이 밝아지매 우물가에 두레박 소리가 귀에 얼른 들리기에 날이 새었음을 짐작한지라,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단숨으로 우둥퉁 밖에 나가 애걸한다.<br><br>"우물가에 오신 부인 뉘신 줄은 모르나 칠일 만에 어미 잃고 젖 못 먹어 죽게 된 이 아기를 젖 좀 먹여 주오."<br>그러나 그 부인 대답한다.<br>"나는 젖이 없소마는 젖 있는 여인네가 이 동네에 많으므로 아기 안고 찾아가서 좀 먹여 달라 하면 누가 괄시하겠소?"<br><br>심봉사는 그 말을 듣자 품속에다 아기 안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거머 잡고 더듬더듬 동네로 걸어가서 젖먹이 있는 집을 찾아 사립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며 애걸복걸 빈다.<br><br>"이 댁이 뉘시온지 사뢸 말씀 있나이다."<br>"어쩐 일로 오셨소?"<br>"현철하던 우리 아내 인심으로 생각하나 눈 먼 나를 보더라도 어미 잃은 우리 아기 이 아니 불쌍하오! 댁의 아기 먹고 남은 젖이 있거들랑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br><br>근방의 부인네들 심봉사의 사정을 알므로 한없이 측은히 여겨서 아기 받아 젖을 먹이고 돌려주며 말한다.<br>"여보시오 봉사님, 어렵게 생각말고 내일도 안고 오고, 모레도 안고 오면 이 애를 설마 굶게 하겠소."<br><br>백배로 치하하고 아기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요를 덮어 뉘어 놓고, 아기가 노는 사이에 심봉사는 동냥을 다닌다. 이렇듯이 구걸하여 매월 초하루 보름의 삭망과 소상을 빠뜨리지 아니하며 지나갈 때, 심청이는 크게 될 사람이라 천지신명이 도와주어 잔병없이 자라나니 흐르는 물 같은지라, 그의 나이 육칠 세가 되어가니 소경 아비의 손을 잡고 앞에 서서 인도한다. <br><br>다시 심청의 나이 십여 세가 되어가니 얼굴은 일색이요, 효행이 지극하였다. 소견도 능통하고 재주도 매우 빼어나서 부친께 바치는 조석 반찬과 모친의 기제사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므로 어른을 넘어설 지경이니 아니 칭찬하는 이 없다.<br><br>세상에 덧 없는 것은 세월이요, 무정한 것은 가난이라. 심청의 나이 열한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가세도 군색하고 늙은 부친은 병으로 시달리니, 어리고 연약한 몸이 무엇을 의지하고 살리오.<br><br>하루는 심청이 부친께 여쭙는다.<br>"아버님 들으십시오. 눈 어두우신 아버지가 험한 큰 길을 다니시면 다치기 쉬우며, 비바람을 무릅쓰고 나다니시면 병환 나실까 염려되오니, 오늘부터 아버지는 집에 앉아 계시오면 소녀 혼자 밥을 얻어 조석 걱정 덜겠습니다."<br><br>심청이는 그날부터 밥을 빌러 나섰다. 이렇듯이 봉양하여 춘하추동 사시절을 쉬는 날이 없이 밥을 빌어왔고 나이 점점 들수록 바느질과 길쌈으로 삯을 받아 부친 공경을 한결같이 하였다.<br><br>세월은 흐르는 물 같아서 심청이가 열다섯 살이 되니 얼굴이 나라에서 첫손 꼽는 국색이요, 효행이 극진한데 재질마저 비범하고 문필도 넉넉하니 여자 중에 군자요, 새 무리 중에 봉황이요, 꽃 중에서는 모란에 비길 만했다.<br><br>원근에 이 소문이 퍼지매 저 건너마을 무릉촌의 장승상 부인이 심소저를 청하니 시비를 따라갈 때 천천히 발을 옮겨 승상 댁에 당도한다.<br>"네가 틀림없는 심청이냐? 과연 듣던 말과 같이 아름답구나."<br><br>자리를 주어 앉힌 후에 승상부인이 자세히 살펴보니 별로 단장한 바도 없거늘 타고난 자태가 아리따워 나라에서 으뜸가는 미녀였다.<br>"심청아 내 말 듣거라. 승상이 이미 세상을 떠나시고 아들은 삼 형제 이나 모두 다 황성에 가 객지에 벼슬살이요, 다른 자식과 손자는 없다.<br><br>슬하에 말벗이 없으니 자나 깨나 적적한 빈 방에서 대하느니 촛불이요, 기나긴 겨울 밤에 보는 것이 고서로다. 네 신세를 생각하니 양반의 후예로서 저렇듯 빈곤하니, 내 집의 수양딸 되면 여공도 손 익히게 하고 문자도 학습시켜 친딸같이 출가시켜 말년 재미를 보고자 하는데 너의 뜻이 어떠하냐?"<br><br>심청이 여쭙기를,<br>"팔자가 기구하여 저 낳은 지 칠일 만에 모친이 세상을 뜨셨기로 앞못 보는 늙은 부친이 저를 싸안고 다니면서 동냥 젖을 얻어 먹여 겨우 겨우 길러 내어 이토록 컸으나, 모친의 모습과 몸가짐을 전혀 몰라 철천의 한이 되어 그칠 날이 없기로 내 부모를 생각하여 남의 부모 공경하였거늘 오늘날 승상 부인 존귀하신 처지로서 미천함을 불구하시고 은혜입으면 이 몸은 부귀영화 누리겠지만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사철 의복, 조석 공양 뉘 있어 하오리까? 길러 내신 부모 은덕 사람마다 있거니와 이 몸은 더욱 부모 은혜 견줄 바 없으니 잠시라도 슬하를 떠날 수 없습니다."<br><br>심청이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내려 옥 같은 얼굴을 적시니, 봄바람 보슬비에 복사꽃 떨어지듯 하는지라, 부인이 가상히 듣고 이른다.<br><br>"네 말 들으니 과연 하늘이 낸 효녀로다. 망령된 이 늙은이 미처 그 일을 생각지 못하였구나."<br>부인이 애틋이 여겨 비단과 패물이며 양식을 후히 주고 시비와 함께 보내며 말씀하신다.<br><br>"심청아 내 말 듣거라. 너는 나를 잊지 말고 모녀 간의 굳은 의를 지켜라."<br>이리하여 심청이는 하직하고 돌아왔다. 그 무렵 심봉사는 무릉촌에 딸을 보내고 말벗 없이 홀로 앉아 딸 오기만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발자취는 전혀 없다. 심봉사는 갑갑하기에 지팡막대 거머잡고 딸 마중 나가본다.<br><br>더듬더듬 주춤주춤 사립문 앞에 나가다가 비탈에 발이 삐긋 밀려 개천물에 풍덩하고 떨어지니, 얼굴에는 진흙이요 의복이 다 젖었다. 두 눈을 희번덕,두 팔을 허위적, 나오려면 빠지고 사방 물이 출렁출렁 물소리만 요란하니, 심봉사 겁을 먹고 외친다.<br><br>"아무도 거기 없소? 사람 살리시오!"<br>몸은 점점 깊이 빠져 허리 위로 물이 돈다.<br>"아이고 나 죽는다!"<br>차츰 물이 올라와서 목덜미를 감돈다.<br>"허푸 허푸, 아이고 사람 죽소!"<br><br>아무리 소리를 친들 오가는 사람이 그쳤으니 뉘 있어 건져 줄까.<br>이때 몽운사의 화주승이 지나가다가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이 개천물에 떨어져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그 중은 깜짝 놀라 굴갓.장삼을 훨훨 벗어 되는 대로 버려두고, 짚고 있던 구절죽장은 되는 대로 내던지고, 행전.대님을 다 벗고 누비바지 아래를 똘똘 말아올려 붙이고는 밸로가 고기 새끼 노리듯 징검 징검 들어가서 심봉사의 가는 허리를 후려쳐 담쑥 안고 '어뚜름 이어차!' 끌어내어 밖에다 앉힌 후에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심봉사였다.<br><br>"허허 이게 웬일이오?"<br>"나 살린 이 뉘시오?"<br>"소승은 몽운사 화주승이올시다."<br><br>그 중이 손을 잡고 심봉사를 인도하여 방안으로 들어가서 젖은 의복을 벗겨놓고 마른 옷을 입힌 후에 물에 빠진 내력을 물으매 심봉사가 신세를 한탄하며 전후 사정을 말하니 중이 일러준다.<br><br>"우리 절 부처님은 영검이 많은지라, 빌어서 아니 되는 일 없고 구하면 응하시니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로 올리고 지성으로 비시면 살아 생전에 눈을 떠서 천지 만물 두루 보고 성한 사람 됩니다."<br><br>심봉사는 그 말을 듣더니 신세 처지는 생각지 않고 눈 뜬다는 말이 반갑다.<br>"여보시오 대사!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문(불가에서 선을 권하는 글발)에 적어 가소."<br>그 중은 허허 웃는다.<br>"적기는 적겠으나 댁의 가세를 둘러보니 삼백 석을 주선할 길 없을듯 합니다."<br>심봉사가 화를 낸다.<br>화주승이 다시 허허 웃으며 권선문에,<br>'심학규 미 삼백 석.'<br>이라 대서특필하고는 하직하고 돌아갔다.<br><br>심봉사가 중을 보내놓고 곰곰히 생각하니, 이는 긁어 부스럼이요 도리어 후환이라 홀로 앉아 스스로 탄식한다.<br>"내가 공을 드리려다 만약에 죄가 되면 이를 장차 어찌하잔 말인고?"<br>묵은 근심 새 걱정이 불같이 일어나 신세를 탄식하며,<br>"천지가 아주 공평하여 별로 치우침이 없건마는 이내 팔짜 어찌하여 형세없고 눈도 멀어 해 달같이 밝은 것을 분별할 수 전혀 없고, 처자 같은 정든 사이도 마주 대하여 못 보는가? 우리 망처 살았으면 조석 근심 없을 것을, 다 커가는 딸자식이 동네 품을 팔아 겨우 풀칠하는 중에 공양미 삼백 석이 어디 있어 호기있게 적어 놓고 백 가지로 궁리하나 방책이 전혀 없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장독, 그릇 다 팔아도 한 되 곡식 못 살 것이며, 장롱, 함을 방매해도 단돈 닷 냥에도 사지 않으리라. 집이라도 팔자 하나 비바람을 못 가리니 나라도 아니 사리라. 내 몸이나 팔자 한들 눈 못 보는 이 잡것을 어느 누가 사가리오? 애고 애고 서러워라, 애고 애고 서러워라."<br><br>한동안 이렇게 슬피 울고 있을 때에 심청이가 급히 돌아와서 닫힌 방문을 벌떡 열고, <br>"아버님!"<br>하고 부르더니, 저의 부친의 모양 보고 깜짝 놀라 달려든다.<br>"애고 이게 웬일이시오?"<br><br>승상 댁 시비에게 방에 불을 때달라고 부탁하고 치마를 걷어쥐고 눈물을 씻으면서 얼른 밥을 지어 부친 앞에 상을 놓는다.<br>"아버지 진지 잡수시오."<br>"나 밥 안 먹으련다."<br>"무슨 근심이라도 계시오?"<br>"네 알 일 아니로다."<br>"아버지 무슨 말씀이오? 소녀 비록 불효이나 말씀을 속이시니 마음이 서럽습니다."<br>"아가 아가 울지 마라. 너 속일 리 없지마는 네가 만일 알고 보면 지극한 네 효성이 걱정이 되겠기로 진작 말 못하였다. 아까 너 오는가 문밖에 나가다가 개천물에 빠져 죽게 되었더니 몽운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살려놓고 '몽운사 부처님이 영검하기 다시 없으니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시주하면 생전에 눈을 떠서 성한 사람이 된다'기로 형편은 생각지 아니하고 홧김에 적었으니 이 어찌 될 말이냐? 도리어 후회로다."<br><br>심청이 그 말 듣고 반기어 웃으면서 대답한다.<br>"이제 새삼 후회사시면 정성이 못 되니 아버님 어두우신 눈 정녕 밝혀보게 공양미 삼백 석을 아무쪼록 마련하여 보겠습니다."<br><br>심청이는 부친의 소원을 듣고 그날부터 뒤뜰을 정히 하고 황토로 단을 모아 좌우로 금줄 매고 정화수 한 동이를 소반 위에 받쳐 놓고 북두칠성 호반(정화수 떠 놓는 소반)에 향 피우고 재배한 다음에 공손히 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빈다.<br><br>이렇듯이 밤낮으로 빌었더니 도화동 심소저는 하늘이 아는 바라 흠향(신명이 제물을 받음)하시고 앞 일을 인도하시었다.<br>하루는 유모 귀덕 어미가 오더니,<br><br>"아가씨, 이상한 일 보았나이다."<br>"무슨 일이 이상하오?"<br>"어떠한 사람인지 십여 명씩 다니면서, 값은 고하간에 15세 처녀를 사겠다고 다니니 그런 미친 놈들이 있소?"<br><br>심청이 속마음으로 반겨 듣고,<br>"여보, 그 말 진정이오? 정말로 그리 될 양이면, 그 다니는 사람 중에 노숙<br>하고 점잖은 사람을 불러오되, 말이 밖에 나지 않게 조용히 데려오오."<br>귀덕 어미 대답하고 과연 데려왔는지라, 처음은 유모를 시켜 사람 사려는 까닭을 물은즉 그 사람의 대답이,<br><br>"우리는 본디 황성 사람으로서 장사차로 배를 타고 만 리 밖에 다니더니, 배 갈 길에 인당수라 하는 물이 있어 변화 불측하여 자칫하면 몰사를 당하는데, 15세 처녀를 제수로 제사를 지내면, 수로만리를 무사히 왕래하고, 장사도 흥왕하옵기로 생애가 원수로 사람 사러 다니오니, 몸을 팔 처녀가 있사오면 값을 관계치 않고 주겠나이다."<br><br>심청이 그제야 나서며,<br>"나는 본촌 사람으로, 우리 부친 안맹하여 세상을 분별 못하기로 평생에 한이 되어 하나님 전에 축수하던 중, 몽운사 화주승이 공양미 삼백 석을 불전에 시주하면 눈을 떠서 보리라 하되, 가세가 지빈하여 주선할 길 없삽기로 내 몸을 방매하여 발원하기 바라오니 나를 삼이 어떠하오? 내 나이 15세라 그 아니 적당하오?"<br><br>선인이 그 말 듣고 심소저를 보더니 마음이 억색하여 다시 볼 정신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섰다가,<br>"낭자 말씀 듣자오니 거룩하고 장한 효상 비할 데 없삽내다."<br>이렇듯이 치하한 후에, 저의 일이 긴한지라,<br>"그리하오."<br>하고 허락하니 심소저가 묻기를,<br><br>"행선 날이 언제이니까?"<br>"내월 15일이 행선할 날이오니, 그리 아옵소서."<br>피차에 상약하고, 그 날로 선인들이 공양미 삼백 석을 몽운사에 보냈다. <br><br>심소저는 귀덕 어미를 백 번이나 단속하여 말 못나게 한 연후에, 집으로 돌아와 부친 전에 여쭈오되,<br>"아버지."<br>"왜 그러느냐?"<br>"공양미 삼백 석을 몽운사로 올렸나이다."<br><br>심봉사 깜짝 놀라서,<br>"그게 어쩐 말이냐? 삼백 석이 어디 있어 몽운사로 보냈어?"<br>심청이 같은 효성으로 거짓말을 하여 부친을 속일까마는, 사세 부득이라 잠깐 속여 여쭙는다.<br><br>"일전에 만나뵈온 무릉촌 장승상 댁 부인께서 소녀보고 말씀하기를 '수양딸 노릇하라'하되 아버지 계시기로 허락을 아니 하였는데, 사세 부득하여 이 말씀 사뢰었더니 부인이 반겨 듣고 쌀 삼백 석 주시기로, 몽운사로 보내옵고 수양딸로 팔렸습니다."<br><br>심봉사 물정 모르고 소리내어 웃으며 즐겨한다.<br>"어허, 그 일 잘 되었다. 언제 데려간다더냐?"<br>"내월 15일에 데려간다 하옵니다."<br>"네가 게 가서 살더라도, 나 살기 관계찮지! 어, 참으로 잘 되었다."<br><br>부녀 간에 이같이 문답하고, 부친을 위로한 후, 심청이는 그 날부터 선인을 따라갈 일을 곰곰 생각하니, 사람이 세상에 생겨나서, 한때를 못 보고 이팔 청춘에 죽을 일과 안맹하신 부친 영결하고 죽을 일이, 정신이 아득하여 일에도 뜻이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없이 지내다가 다시 생각하여 보니 엎질러진 물이 되고 쏘아 놓은 살이었다.<br><br>"내 몸이 죽어지면, 춘하추동 사시절에 부친 의복 뉘라 다 할까? 아직 살아 있을 때에, 아버지 사철 의복 망종 지어 드리리라."<br>하고, 춘추 의복과 하동 의복을 보에 싸서 농에 넣고, 갓.망건도 새로 사서 걸어 두고 행선 날을 기다릴 제, 하룻밤이 격한지라. <br><br>밤은 깊어 삼경인데, 은하수는 기울어져 촛불이 희미할 제, 두무릎을 쪼그리고 아무리 생각한들 심신이 난정이라. 부친의 벗은 버선볼이나 망종 받으리라, 바늘에 실을 꿰어 손에 들고, 하염없는 눈물이 간장에서 솟아올라,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부친 귀에 들리지 않게 속으로 느껴 울며 부친의 낯에다가 얼굴을 가만히 대어 보고 수족도 만지면서,<br><br>"오늘 밤 모시면 다시는 못 뵐 테지. 내가 한 번 죽어지면 여단수족 우리 부친, 누굴 믿고 살으실까? 애닯도다, 우리 부친. 내가 철을 안 연후에 밥 빌기를 하였더니, 이제 내 몸이 죽어지면 춘하추동 사시절을 동네 걸인 되겠구나. 눈총인들 오죽하며, 괄시인들 오죽할까? <br><br>부친 곁에 내가 모셔 백 세까지 공양하다가 이별을 당하여도 망극한 이 설움이 측량할 수 없을 텐데, 하물며 이러한 생이별이 고금천지 간 또 있을까? 우리 부친 곤한 신세, 적수단신 살자 한들 조석 공양 뉘라 하며, 고생하다 죽사오면 또 어느 자식 있어 머리 풀고 애통하며, 초종장례 소대기며 연년 오는 기제사에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 뉘라서 차려놀까? 몹쓸 년의 팔자로다, 칠일 만에 모친 잃고 부친마저 이별하니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우리 부녀 이 이별은, 내가 영영 죽어 가니 어느 때 소식알며 어느 날에 만나 볼까?<br><br>돌아가신 우리 모친 황천으로 들어가고 나는 인제 죽게 되면 수궁으로 갈터이니, 수궁에 들어가서 모녀 상봉 하자 한들 황천 가기 몇 천 리나 된다는지? 황천을 묻고 불원천리 찾아간들 모친이 나를 어이 알며, 나는 모친 어이 알리?<br><br>만일 알고 뵈옵는 날, 부친 소식 묻자오면 무슨 말로 대답할꼬? 오늘 밤 오경 시를 함지(해 넘어가는 곳)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해 뜨는 곳)에 매었으면 하늘같은 우리 부친 한번 더 보련마는 밤 가고 해 돋는 일 그 뉘라서 막을손가?"<br><br>천지가 사정 없어 이윽고 닭이 우니, 심청이 기가 막혀,<br>"닭아 닭아, 우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br>기란 섦지 않으나, 의지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가?"<br><br>밤새도록 섧게 울고 동방이 밝아 오니, 부친 진지 지으려고 문을 열고 나서 보니 벌써 선인들이 사립문 밖에서 주저주저하며, <br>"오늘 행선 날이오니, 빨리 가게 하옵소서."<br>심청이 그 말 듣고, 대번에 두 눈에서 눈물이 빙 돌아 목이 메어 사립문 밖에 나가서,<br><br>"여보시오 선인네들, 오늘 행선하는 줄은 내가 이미 알거니와 부친이 모르오니 잠깐 지체하옵시면, 불쌍하신 우리 부친 진지나 하여 상을 올려 잡순 후에 말씀 여쭈옵고 떠나게 하오리다." <br><br>선인들이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어,<br>"그리하오."<br>허락하니, 심청이 들어와서 눈물 섞어 밥을 지어 부친 앞에 상을 올리고, 아무쪼록 진지 많이 잡수시도록 하느라고 상머리에 마주앉아 자반도 뚝뚝 떼어 수저 위에 올려 놓고 쌈도 싸서 입에 넣어,<br>"아버지, 진지 많이 잡수시오."<br><br>"오냐, 많이 먹으마. 오늘은 각별하게 반찬이 매우 좋구나. 뉘집 제사 지냈느냐?"<br>심청이 기가 막혀 속으로만 느껴 울며 훌쩍훌쩍 소리나니, 심봉사는 물색없이 귀 밝은 체 말을 한다.<br>"아가, 너 몸 아프냐? 감기가 들었나 보구나. 오늘이 며칠이냐? 오늘이 열닷새지, 응?"<br><br>부녀의 천륜이 중하니 몽조가 어찌 없을소냐? 심봉사가 간밤 꿈 이야기를하되,<br>"간밤에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한없이 가 보이니, 수레라 하는 것은 귀한 사람 타는 것이라. 아마도 오늘 무릉촌 승상 댁에서 너를 가마 태워 가려나 보다."<br><br>심청이 들어 보니 분명히 자기 죽을 꿈이로다. 속으로 슬픈 생각 가득하나, 겉으로는 아무쪼록 부친이 안심하도록,<br>"그 꿈이 장히 좋소이다."<br><br>대답하고, 진지상을 물려내고 담배 피워 물려드린 후에, 사당에 하직차로 세수를 정히 하고 눈물 흔적 없앤 후에 정한 의복 갈아입고 후원에 들어가서, 사당문 가만히 열고 주과를 차려 놓고 통곡 재배 하직할 제,<br><br>"불효 여식 심청이는 부친 눈 뜨게 하오려고 남경 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을 팔려 인당수로 떠나오니, 소녀가 죽더라도 아비의 눈 뜨게 하고 착한 부인 작배하여 아들 낳고 딸을 낳아 조상향화 전하게 하소서."<br><br>이렇게 축원하고 문 닫으며 우는 말이,<br>"소녀가 죽사오면 이 문을 누가 여닫으며, 동지, 한식, 단오, 추석 사 명절<br>이 온들 주과포혜를 누가 다시 올리오며, 분향 재배 누가 할고? 조상의 복이 없어 이 지경이 되옵는지, 불쌍한 우리 부친 강근지친 전혀 없고, 앞 못보고 형세 없어 믿을 곳이 없이 되니 어찌 잊고 죽어갈까?"<br><br>우르르 나오더니 자기 부친 앉은 앞에 철썩 주저앉아 '아버지!' 부르더니 말 못하고 기절한다. 심봉사 깜짝 놀라,<br>"아가, 웬일이냐? 봉사의 딸이라고 누가 정가하더냐? 이것이 회동 하였구나. 어쩐 일이냐? 말 좀 하여라."<br><br>심청이 정신 차려,<br>"아버지!"<br>"오냐."<br>"제가 불효 여식으로 아버지를 속였소. 공양미 삼백 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 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 제수로 가기로 하와, 오늘 행선 날이오니 저를 오늘 망종 보오."<br><br>사람의 슬픔이 극진하면 가슴이 막히는 법이라, 심봉사 하도 기가 막혀 놓으니 울음도 아니 나오고 실성을 하는데,<br>"애고, 이게 웬말이냐, 응? 참말이냐 농담이냐? 말 같지 아니하다. 나더러 묻지도 않고 네 마음대로 한단 말가?<br><br>네가 살고 내 눈 뜨면 그는 응당 좋으려니와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 너의 모친 너를 낳고 칠일 만에 죽은 후에 눈조차 어둔 놈이 품안에 너를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동냥 젖 얻어 먹여 그만큼이나 자랐기로 한시름 잊었더니, <br><br>이게 웬말이냐? 눈을 팔아 너를 살지언정 너를 팔아 눈을 산들 그 눈 해서 무엇하랴? 어떤 놈의 팔자로서 아내 죽고 자식 잃고 사궁지수가 되단 말가? <br>네 이 선인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다 제수하는 걸 어디서 보았느냐?<br><br>눈먼 놈의 무남독녀 철모르는 어린것을 나 모르게 유인하여 산단 말이 웬말이냐? 쌀도 싫고 돈도 싫고, 눈 뜨기 내 다 싫다. 네 이 독한 상놈들아! 생사람 죽이면 대전통편(정조 때 편찬한 법전) 율에 걸리렷다!"<br><br>이렇듯이 심봉사는 홀로 큰소리하더니 이를 갈며 죽기로 기를 쓰는지라, 심청이가 허겁지겁 부친을 붙잡는다.<br>"어버지! 아버니! 이 일은 남의 탓이 아니오니 그리 마소서."<br>부녀가 서로 붙잡고 뒹굴며 통곡하니 동화동의 남녀노소 뉘 아니 슬퍼 하리오. 뱃사람들도 모두 눈물진다. 그 중의 한 사람이, <br><br>"여보시오 영좌(수령 곧 선장) 영감! 하늘이 낸 큰 효 심소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봉사 저 영감이 참으로 불쌍하니, 우리 선인 삼십 명이 밥 열 숟가락 모아 한 그릇 밥이 된다 하니 저 양반 남은 여생일랑 우리들이 굶지 않도록 주선하여 주도록 하세."<br><br>하고 발설하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br>"그 말 옳소!"<br>하고 돈 삼백 냥, 백미 백 석, 무명 삼베 각 한 바리를 동중으로 들여 놓으<br>며 말한다.<br><br>"삼백 냥은 논을 사서 착실한 사람 주어 토지를 경작하고, 백미 열닷 섬은 당년 양식하게 하고, 나머지 팔십여 섬은 해마다 풀어 놓고 장리로 추심하면 양미가 풍족하니 그렇게 하시고 무명 삼베 각 한 바리는 사철 의복 짓게 하소서."<br><br>종중에서 의논하여 그리하고 그 연유를 통문 내어 균일하게 구별하였다. 이때 무릉촌의 장승상 부인은 심청이가 몸을 팔아 인당수로 간다는 말을 그제서야 듣고 시비를 시켜 심청을 불렀다.<br><br>"이 무정한 인간아. 내가 너를 안 후로는 자식으로 여겼는데 너는 나를 잊었느냐? 말을 들으니 선인들에게 몸을 팔아 죽으로 간다 하니 너의 효심은 지극하나 네가 죽어 될 일이냐? <br><br>그토록 일이 되었거든 나에게 건너와서 그 연유를 말했던들 이 지경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을! 어찌 그리 철없이 굴었느냐?"<br>하며 손을 잡아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심청이를 앉힌 다음에 타이른다.<br><br>"쌀 삼백 석 내줄 터이니 선인 불러 도로 주고 망녕된 생각일랑 다시는 품지 마라."<br>심청이는 이 말 듣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천연스레 어쭙는다.<br>"당초에 아뢰지 못한 일을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찌하며 또 이 한 몸 어버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자면 어찌 명색 없는 남의 재물을 바라리까? <br><br>이제 와서 백미 삼백 석을 돌려준다면 선인들도 뜻하지 않은 낭패가 될 것이니 그도 또한 어렵고, 한편 사람이 남에게다 한 몸을 허락하여 값을 받고 팔았다가 수삭이 지난 다음 차마 어찌 낯을 들고 보리까? <br><br>늙은 아비 두고 죽는 것이 도리어 불효됨을 모르는 바 아니로되 그것이 천명이니 할 수 없습니다. 부인의 높은 은혜와 어질고 자별하신 말씀 황천에 돌아가 결초보은 하겠습니다."<br><br>승상 부인은 이 말을 듣고 애석한 마음에 차마 놓지 못하고 통곡한다.<br>"네가 잠깐 지체하면 화공을 불러들여 네 얼굴 네 태도를 그대로 그려두고 내 생전에 두고 두고 볼 것이니 잠시 머물러 있어라."<br><br>화공이 그림을 그리니 심소저가 둘이었다. 심청이 울며 여쭙는다.<br>"정녕 부인께서는 전생에 내 부모였으니 오늘날 물러가면 언제 다시 모실수 있으리까? 소녀 글 한 수 지어 내어 부인 앞에 바치리니 걸어 두면 증험이 있으오리다."<br>부인이 매우 반겨 붓과 벼루를 내놓는다.<br><br>      살아 있고 죽어감이 한 토막 꿈이라.<br>      정이 그립다고 하필이면 눈물을 흘리는가?<br>      세상에 가장 애를 끓는 것이라면<br>      강남이 푸르러도 돌아오지 않음이리.<br><br>부인이 또한 두루마리 한 축을 끌러내어 글 한 수를 단숨에 내리쓴다.<br>      까닭 모를 비바람에 양대(무산 신녀에서 인용)의 넋은 <br>      이름난 꽃을 불어 보내어 바다 어귀에 떨어뜨리더라.<br>      인간계로 귀양살이 온 것을 하늘도 보시겠거늘<br>      죄없는 부녀가 사랑 어린 은혜를 끊는도다.<br><br>심청이는 두 손으로 그 글을 받고 눈물로 이별하니, 무릉촌의 남녀노소 뉘 아니 통곡하랴. 심청이가 돌아오니 심봉사 달려들어 딸아이의 목을 껴안고 뛰며 통곡한다.<br><br>"나도 가자, 나하고 가! 혼자 가지는 못한다. 이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br>아도 같이 살자! 나 버리고 못 간다. 고기밥이 되려거든 너와 나와 같이 되자!"<br><br>"우리 부녀간에 천륜을 끊고 싶어 끊고, 죽고 싶어 죽습니까?<br>불효 여식 청이는 생각지 마시고 아버지 눈을 떠서 광명 천지 다시 보고 착한 사람 배필로 삼아 아들 낳고 후사를 전케 하소서."<br><br>심봉사 펄쩍 뛴다.<br>"애고 애고, 그 말 하지 마라. 처자 있을 팔자라면 이런 일을 당하겠느냐? <br>나 버리고는 못 간다."<br>심청이는 사람을 시켜 부친을 붙들어 앉혀 놓고 울며 당부한다.<br><br>"동네 어른님들, 혈혈단신 우리 부친을 내맡기고 죽으로 가는 이 몸은 오직 동중만 믿사오니 굽어 살피소서."<br>이렇듯이 하직할 때 하느님이 아셨는지 백일은 어디 가고 검은 구름 자욱하다. <br><br>이따금 빗방울이 눈물같이 떨어지고 휘늘어져 곱던 꽃은 이울고자 빛이 없고 청산에 초목 수색을 띠어 있고 녹수에 드리운 버들 수심을 돕는 듯, 우짖는 저 꾀꼬리 너 무슨 회포던가? 너의 깊은 한을 내가 알지 못하여도 통곡하는 내 심사는 네가 혹시 짐작할까?<br><br>한 걸음에 눈물지고 두 걸음에 돌아보며 드디어 떠나가니 명도의 풍파가 이제부터 험난하다. 강가에 다다르니 뱃사람이 몰려들어 뱃머리에 좌판 놓고 심소서를 모셔 올려 빗장 안에 앉힌 다음 닻 감고 달아 소리하며 북을 둥둥 울리면서 지향없이 떠나간다. 배 타고 한가운데 떠서 흘러가니 망망한 창해 중에 가없는 물결이다.<br><br>한 곳에 당도하여 닻을 주고 돛을 내리니 이 곳이 인당수다. 고기와 용이 쌍우는 듯 큰 바다 한 가운데 돛도 잃고 닻도 끊기며, 노도 잃고 키도 빠지며, 바람 불고 물결치고 안개마저 자욱한 날에 아직도 갈 길은 천만 리가 넘으며 사면이 검게 어둑 저물어 천지와 지척이 똑같이 막막한데 산 같은 파도가 뱃전을 땅땅치니 당장에 위태로운지라, 도사공 이하가 크게 겁을 먹고 어쩔 바를 몰라하며 혼비백산하여 고사 절차를 차린다.<br><br>섬쌀로 밥을 짓고 콘 돼지를 잡아 큰 칼 꽂아서 정하게 받쳐 놓고 삼색사와 오색 당속(설탕에 조려서 만든 음식)에 큰 소 잡고 동이술을 곁들이어 방향을 가리어 갖다 놓고서 심청이를 목욕시켜 의복을 정히 입히고 뱃머리에 앉힌 다음 도사공이 고사를 올리는데, 북채를 갈라 쥐고 북을 둥둥 둥둥 두리둥둥 울린다.<br><br>"헌원씨가 배를 만들어 가지 못하던 길을 통하게 한 후로 뒷 사람들이 볼받아 저마다 이로써 업을 삼으니 막대한 공이 아닙니까? 하우씨(우왕)는 구년치수에 배를 타고 다스려 오복(서울을 중심으로 다섯 지방)을 구제하고 다시 구주(중국 땅은 아홉 주임)로 돌아들 때 배를 타고 기다렸으며, <br><br>제갈공명의 높은 조화도 동남풍을 불러 일으켜 조조의 백만 수군을 주유를 시켜 불을 질러 적벽 대전할 적에 배 아니면 어찌하였으리오? 우리 동무 스물네 명 상가(장수)로 업을 삼아 15세에 배를 타서 여러 해를 거듭하여 서남방을 떠돌다가 오늘날 인당수에 제물을 바치오니 동해신 아명이며, 남해신 축융이며, 서해신 거승이며, 북해신 우강이며 모두 강물의 신과 모두 냇물의 신이 이 제물을 드시고 여러 신령께서 한결같이 굽어 살피시어 비렴(바람 신)으로 하여금 바람 주시고 해약(바다 신)으로 하여금 인도케 하여 황금더미로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소서. 고수레! 둥둥."<br><br>빌기를 마치고 심청이더러 물에 들라 하며 뱃사공들이 재촉하니, 심청이는 뱃머리에 우뚝 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느님께 빈다.<br>"비나이다 비나이다. 심청이 죽는 것은 추호도 서럽지 않으나 앞 못보는 우리 부친 천지에 사무치는 원한을 살아 생전에 풀어 드리려고 죽음을 당하오니 하나님이 굽어 살피시어 우리 부친 어두운 눈을 불원간 밝게 하시어 광명천지를 보게 하소서."<br><br>다시 뒤로 펄썩 주저앉더니 도화동을 향하면서,<br>"아버지 나 죽소! 어서 눈을 뜨소서!"<br>손을 짚고 일어서서 사공들에게,<br>"여러 선인 상가님네들, 평안히 가시고 억만금의 이를 얻어 이물가를 지날 때면 나의 혼백 넋을 불러 떠돌이 귀신을 면케 하여 주오."<br><br>이르고 빛나는 눈을 감고 치마폭을 뒤집어 쓰고 이리저리 저리이리 뱃머리로 와락 나가 푸른 물에 풍덩 빠지니, 물은 인당수요, 사람은 심봉사의 딸 심청이라. 인당수 깊은 물에 힘없이 떨어진 꽃 헛되이 고기 뱃속에 장사 지냈단 말인가?<br><br>그 배의 영좌는 한숨 지며 통곡하고 삿대잡이는 엎드려 운다.<br>"하늘이 낸 큰 효 심소저는 아깝고 불쌍하다. 부모 형제가 죽었다 한들 이에서 더할소냐?"<br><br>이 무렵 한편 무릉촌의 장승상 부인은 심소저를 이별하고 애석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심소저의 화상 족자를 벽 위에 걸어두고 날마다 살펴보는데, 하루는 족자 빛이 검어지며 화상에서 물이 흐르므로 부인이 놀란다.<br>"이제는 죽었구나!"<br><br>슬픔을 못 이기어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 가슴이 터지는 듯 기막혀 슬피 우는데 이윽고 족자 빛이 완연히 새로워지니 마음에 괴이쩍게 여기었다.<br>"누가 건져 내어 목숨을 부지하였는가? 푸른 바다 만리 밖 소식 어찌 알<br>리?"<br><br>그날 밤 삼경 초(밤11시)에 제물을 갖추어 시비에게 들리고 강가에 나가 백사장 정한 곳에 주과포를 벌어놓고 승상 부인은 몸소 축문을 크게 읽어 심소저의 넋을 위로하며 제사를 지냈다. 강촌에 밤이 깊어 사면이 고요한데,<br><br>"심소저야 심소저야! 아깝도다 심소저야! 앞 못 보는 부친 눈을 뜨게 하려 평생 한이 되는지라. 네 효성이 죽기로써 갚으려고 실낱 같은 목숨을 스스로 내던져 고기 뱃속 넋이 되니 가련하고 불쌍코나!<br><br>하느님은 어찌하여 너를 내고 죽게 하며, 귀신은 어찌하여 죽는 너를 못 살리나? 네가 나지 말았거나 내가 너를 몰랐거나 할 것이지 생리사별이 웬말인고? 그믐이 되기 전에 달이 먼저 기울었고, 모춘이 되기 전에 꽃이 먼저 떨어지니 오동에 걸린 달은 뚜렷한 네 얼굴이 다시 온 듯, 이슬에 적은 꽃은 천연한 네 몸가짐 눈앞에 내리는 듯, 대들보에 앉은 제비 아름다운 네 소리로 무슨 말을 하소연할 듯, 두 귀밑의 머리털은 이로하여 희여지고 인간계에 남은 세월 너로 인해 재촉되니 무궁한 나의 수심을 너는 죽어 모르거니와 나는 살아 고생이렷다. 한 잔 술로 위로하니 꽃다운 넋이여, 오호라 슬프구나! 상향."<br><br>부인이 눈을 씻고 제물을 조금씩 뜯어 물에 띄울 때 술잔이 뒹구니 심소저의 혼이 온 듯하여 부인은 그지없이 서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대저 이 세상같이 억울하고 고르지 못한 것은 없으리라. 가난하고 약한 사람은 그 부모가 낳은 몸과 하늘이 주신 귀중한 목숨도 보전치 못하고 심청이 같은 하늘이 낸 큰 효가 필경에는 인당수 물에 가련한 몸이 잠기게 되었다.<br><br>그러나 그가 잠긴 곳은 물 속이 아니라 이 인간계를 영 이별하고 간 하늘의 상계이니, 하느님의 능력이 한없이 큰 세상이다. 이욕에 눈이 어두운 인간계의 사람들과 말 못하는 부처는 심청이를 돕지 못하였으나 인당수의 물귀신이야 심청이를 알아보지 못하리오?<br><br>그때 옥황상제께서는 사해 용왕에게 분부를 내리시었다.<br>"명일 오시 초각에 인당수 바닷속으로 하늘이 낸 큰 효 심청이가 떨어질 <br>터이니, 그대들은 등대하였다가 수정궁에 영접하고, 다시 영을 기다려 도로 그를 인간계로 보내되 만일에 시각을 어기는 날에는 사해의 수궁제신들이 죄를 면치 못하리라."<br><br>이렇듯 분부가 지엄한지라 사해의 용왕들이 황겁하여 원참군 별주부와 백만의 철갑제강(게나 조개 따위)이며 무수한 시녀들로 하여금 백옥 교자를 채비하고 그 시각을 기다릴 때 오시 초각이 되자 백옥같은 한 소저가 바다 위로 떨어지매 여러 선녀들이 이를 옹위하여 심소저를 고이 모셔 교자에 앉히니, 심소저는 정신을 가다듬고 사양한다.<br><br>"나는 속세의 천한 몸이니 어찌 황공하여 용궁의 교자를 탈 수 있겠습니까?<br>여러 시녀가 여쭙는다.<br>"옥황상께서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만약에 지체하시면 사해 수궁에 탈이 나니 지체 마시고 타십시오."<br><br>심청이는 사양하다 못하여 교자에 올라앉으니, 여러 선녀들이 옹위하여 수정궁으로 들어갈 때 위의가 굉장하다. 옥황상제의 명이거늘 어찌 거행함이 범연하랴. 사해의 용왕들이 각기 선녀를 보내어 조석으로 문안하고 번갈아가며 시위할 때 삼일에 소연이요, 오일에 대연으로 극진히 위로한다.<br><br>심소저가 이렇듯이 수정궁에 머무를 때 하루는 하늘에서 옥진 부인이 오신다 하나, 심소저는 누구인지 모르고 일어서 바라보니 오색 구름이 푸른 하늘에 서리며 요란한 풍악이 궁중에 낭자하더니, 머리 바른쪽에는 단계화요 왼쪽에는 벽도화로, 청학과 백학이 옹위하고 공작새는 춤을 추고 안비는 인도하며 천상 선녀 앞을 서서 용궁 선녀 뒤를 서서 엄숙하게 내려오니 보던 중 처음이다. 이윽고 다다르자 교자에서 옥진 부인이 내려 안으로 들어온다.<br>"청아, 너의 어미 내가 왔다."<br>"애고 어머니!"<br><br>심소저는 우르르 달려들어 모친 목을 덥썩 잡고 웃다 울다 하면서 말한다.<br>"변변치 못한 소녀 몸이 부친 덕에 아니 죽고, 15세를 다하도록 모녀간에 어머니가 중하거늘 이날 이때껏 얼굴을 모르기로 평생에 한이 되어 잊을 날이 없더니, 오늘에야 모녀가 상봉하여 나는 한이 없거니와 외로우신 아버지는 누구 보고 반기실까?"<br><br>그러구러 모녀가 어울려서 여러 날을 수정궁에 머물러 있더니 하루는 옥진부인이 심청이한테 말한다.<br>"반가운 마음이야 한량없건마는 옥황상제의 처분으로 맡은 직분이 허다하므로 오래 지체를 못하겠구나. 오늘은 너와 이별하고 네가 장차 부친을 만나게 될 줄 네 어찌 알랴만, 후일에 서로 반길 때가 있으리라."<br><br>옥진 부인 일어서서 손을 잡고 작별하더니, 공중을 향하여 홀연 삽시간에 사라지니 심청이는 할 수 없이 눈물로 하직하고 계속 수정궁에 머물러 있었다.<br><br>이럴 즈음 옥황상제께서는 심낭자의 출천대효를 가상히 여기시고, 수정궁에 오래 둘 도리가 없는지라 사해 용왕에게 다시 전교를 내리셨다.<br>"대효 심낭자를 옥정연화 꽃봉오리 속에 아무쪼록 고이 모셔 오던 길인 인당수로 도로 내보내라."<br><br>꽃봉오리 속의 심낭자는 가는 바를 모르는데 수정문 밖 떠날적에 하늘에서 사나운 비바람이 없이 맑게 개었으며 바다 또한 잔잔하여 파도가 일지 않는다. 때는 봄이라 해당화는 바닷물에 피어 있고, 동풍에 푸른 버들은 바닷가에 가지를 디리웠는데 고기 낚는 저 어부는 시름없이 앉았구나.<br><br>한 곳에 다다르니 날씨가 명랑하고 사면이 광활하다. 심청이가 정신을 가다듬고 둘러보니 용궁 가던 인당수라, 슬프다 이 역시 꿈을 꿈이 아닐까? 바로 그 무렵, 남경으로 장사 하러 갔던 선인들이 심낭자를 제수로 바친 덕에 그 행보에 이를 남겨 돛대 끝에 큰 기 꽂고 웃음으로 지껄이며 춤추고 돌아오다 인당수에 다다르니, 큰 소 잡고 동이 술에 각종 과실 차려놓고 북을 치며 제를 지내던 참이다. <br>해상을 바라보니 난데없는 꽃 한 송이 물 위로 덩실덩실 떠내려 오기에 선원들이 내다르며 말한다.<br>"이 애야, 저 꽃이 웬 꽃이냐? 천상의 월계화냐, 요지의 벽도화냐? 천상꽃도 아니요, 세상꽃도 아닌데 해상에 홀로 있을진대 아마도 심낭자의 넋인가보다."<br><br>이같이 공론이 분분할 때 백운이 자욱한 가운데 산뜻하게 푸른 옷을 떨쳐입은 선관 하나가 공중에 학을 타고 외쳐 이른다.<br>"해상에 떠 있는 선인들아, 꽃 보고 떠들지 마라. 그 꽃은 천상의 귀한 꽃<br>이니 타인은 일체 접근치 말 것이며 각별 조심하여 고이 모셔다가 천자께 진상토록 하라. 만일 그리 아니하면 뇌성보화천존으로 하여금 생벼락을 내리도록 하련다."<br><br>뱃사람들 그 말 듣고 황겁하여 벌벌 떨면서 그 꽃을 고이 건져 빈칸에 모신 후에 청포장을 둘러치고 내외 제례가 분명하였다. 닻을 감고 돛을 다니 순풍이 절로 일어 서울 남경을 순식간에 당도하여 해안에 배를 대었다.<br><br>때는 바로 경진년 삼월이라. 당시 송나라 천자께옵서는 황후의 상사를 당하였으니, 억조 창생 만민들은 이를 것도 없거니와 조공하는 열두 나라 사신들은 황황급급 분주한데, 천자는 마음이 어지러워 슬픔을 가라앉히려고 각색 화초를 고루고루 구하여서 상림원에 채우고 황극전 앞뜰에 골고루 심었으니, 기화요초가 아니랴!<br><br>이렇듯 여러 가지 화초가 만발한데 꽃 사이로 쌍쌍이 범나비는 꽃을 보고 반기며 너울너울 춤을 출 때 천자는 슬픔을 잠시 잊고 마음에 기꺼워 꽃을 보고 즐거워하시었다.<br><br>마침 이때 남경 장사 선인들이 희귀한 꽃 한 송이를 진상하니, 천자는 이를 보고 매우 기꺼워하시며 옥쟁반에 받쳐놓고 진종일 그 꽃을 사랑하시니 구름같은 황극전에 날이 가고 밤이 들어도 들리는 것은 시각을 알리는 경점소리뿐이었다.<br><br>천자가 잠자리에 드시니 비몽사몽 간에 봉래산 선관이 학을 타고 분명히 내려와서 천자 앞에 돌연히 이른다.<br>"황후가 돌아가셨음을 상제께서 아시고 인연을 보내셨으니 폐하께서는 어서 바삐 살피소서."<br><br>천자가 잠을 깨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거닐다가 궁녀를 급히 불러 옥쟁반의 꽃을 살피시니, 보던 꽃이 없고 한 낭자가 앉아 있으매 천자는 매우 기꺼워한다.<br><br>이튿날 아침에 삼태육경을 비롯하여 만조 백관 문무 제신을 불러 놓고 천자께서 이르신다.<br>"짐이 간밤에 꿈을 꾼 후 기이하기로, 어제 선인들이 진상한 꽃을 보니 그 꽃은 간 곳이 없고 다만 한 낭자가 앉았는데 황후의 기상인지라 짐은 이를 하늘이 정한 연분으로 여기거니와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br><br>문무 제신이 일제히 아뢴다.<br>"황후께서 승하하셨음을 상천이 아시고 인연을 보내셨으니 국운이 무궁하여 하늘이 보호하심입니다. 국가의 경사 이에 더함이 없는 줄로 아뢰오." <br>이리하여 대례를 마친 다음 심낭자를 금덩(귀부인이 타던 가마)에 고이 모셔 황후전에 들게 하니 위의와 예절이 거룩하고 화사했다.<br><br>이로부터 심황후의 어진 덕이 천하에 고루 퍼지니, 조정의 문무 백관과 각성 자사와 열읍 태수와 만백성이 엎드려 축원한다.<br>"우리 황후 어진 성덕 만수무강하소서."<br><br>이즈음 심봉사는 땅를 잃고 실성하여 날마다 탄식할 때 봄이 가고 여름 되니 녹음방초도 원망스럽고 자연을 노래하는 새도 심봉사를 비웃는 듯하여 눈물지며 허송 세월하였다.<br><br>인간에 있어 가장 절실한 정은 천륜이라, 심황후는 귀한 몸이 되었으나 앞 못보는 부친 생각이 무시로 솟아올라 홀로 앉아 근심과 탄식하는 날이 많았다.<br><br>이럴 즈음 천자께서 내전에 들어와 황후를 보시니, 눈에 눈물이 서려있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기에 천자께서 물으신다.<br>"황후는 미간에 수심이 가득하니 어인 일이오?"<br>황후가 꿇어 앉으며 나직이 여쭙는다.<br><br>"신첩은 본래 용궁인이 아니라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학규의 딸인데, 첩의 부친이 앞을 보지 못하는지라 철천지 한이더니,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감은 눈을 뜬다 하기로 남경 장사 선인들에게 이 몸을 팔아 인당수에 빠졌습니다.<br><br>하늘이 굽어 살피시어 몸은 귀하게 되었으나 천지인간 병신 중에는 소경이 제일 불쌍하니 맹인 불러 음식을 내려 주시면 첩의 천륜을 찾을까 합니다."<br>황제가 즉시 근신을 불러 연유를 하교하시며 금월 말일 황성에서 맹인 잔치를 배푼다는 칙지를 선포하여 모든 맹인들을 상경토록 하였다.<br><br>그러나 심봉사는 어디 갔기로 이 경사를 모르는가?<br>이때 심학규는 몽운사 부처가 영험이 없었는지 딸 잃고, 쌀 잃고, 눈도 뜨지 못해 지금껏 심봉사는 봉사 그대로 있는지라. 그 중에서 눈만 못떴을 뿐 아니라 생애의 고생이 세월을 따라 더욱 깊어간다.<br><br>도화동 사람들은 당초의 남경 장사 부탁도 있고 곽씨 부인을 생각하든지 심청의 정곡을 생각하여도 심봉사를 위하여 마음 극진히 써서 돕는 터라. 그때 선인이 맡길 전곡을 착실히 이삭을 늘여 가며 심봉사의 의식을 넉넉케 하고 행세도 차차 늘어 가더니, 이때 마침 본촌에 뺑덕 어미라하는 계집이 있어 행실이 간악한데, 심봉사의 가세 넉넉한 줄 알고 자원하여 첩이 되어 심봉사와 사는데 이 계집의 버릇은 아주 인중지말(사람 가운데 제일 못난 사람)이라. 그렇듯 어두운 중에도 심봉사를 더욱 고생되게 가세를 결단내는데, 쌀을 주고 엿사먹기, 벼를 주고 고기사기, 잡곡으로 돈을사서 술집에서 술먹기와 이웃집에 밥 부치기, 빈 담뱃대 손에 들고 보는 대로 담배청하기, 이웃집에 욕 잘하고 동무들과 싸움 잘하고 정자 밑에 낮잠 자기, 술 취하면 한밤중 긴 목놓고 울음 울고, 동리 남자 유인하기, 일년 삼백육십 일을 입 잠시 안 놀리고는 못 견디어 집안의 살림살이를 홍시감 빨듯 홀짝 없이하되, 심봉사는 다년간 공방으로 지내던 터라 기중 실가지락(부부 사이의 금술)이 있어 삯 받고 관가 일을 하듯 하되, 뺑덕 어미는 마음 먹기를 형세를 털어 먹다 이삼 일 양식할 만큼 남겨놓고 도망할 작정으로, 유월 까마귀 곤 수박 파먹듯 불쌍한 심봉사의 재물을 주야로 퍽퍽 파던 터라.<br><br>하루는 심봉사 뺑덕 어미를 불러,<br>"여보소, 우리 형세가 매우 착실하더니 지금 남은 살림 얼마 아니 된다 하니, 내 도로 빌어먹기 쉬운즉 차라리 타관에 가 빌어먹세. 본촌에는 부끄럽고 남의 책망 어려우니 이사하면 어떠한가?"<br><br>"매사를 가장 하라는 대로 하지요."<br>"당연한 말이로세. 동리 사람에게 빚이나 없나?"<br>"내가 줄 것 조금 있소."<br>"얼마나 되나?"<br>"뒷 동리 높은 주막에 가 해정주 한 값이 마흔 냥."<br><br>심봉사 어이없어,<br>"잘 먹었다. 또 어데?"<br>"저 건너 불똥이 함씨에게 엿값이 서른 냥."<br>"잘 먹었다. 또."<br><br>"안촌 가서 담배값이 쉰 냥."<br>"이것 참 잘 먹었네."<br>"기름 장사한테 스무 냥."<br>"기름은 무엇했나?"<br>"머리 기름 했지."<br><br>심봉사 기가 막히고 하도 어이가 없어,<br>"실상 얼만큼 아니 되네."<br>"고까짓 것 무엇이 많소?"<br>한참 이렇듯 문답하더니 심봉사는 그 재물을 생각할 적이면 그 딸의 생각이 더욱 뼈가 울리며 간절한지라. <br><br>여광여취(매우 기뻐서 미친 듯도 하고 취한 듯도 함)한 듯 홀로 뛰어나와 심청 가던 길을 찾아 강변에 홀로 앉아 딸을 불러 우는 말이,<br>"내 딸 심청아, 너는 어이 못 오느냐. 인당수 깊은 물에 네가 죽어 황천 가<br>서 너의 모친 뵈옵거든 모녀간의 혼이라도 나를 어서 잡아가거라."<br><br>이렇듯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관차가 심봉사 강변에서 운단 말을 듣고 강변으로 쫓아와서,<br>"여보 봉사, 관가님께서 부르시니 어서 바삐 가십시다."<br>심봉사 이 말 듣고 깜짝 놀라,<br>"나는 아무 죄가 없소" <br>"황성 맹인 잔치 한다니 어서 급히 올라가라."<br><br>심봉사 대답하되,<br>"옷 없고 노자 없이 황성 천 리 못 가겠소."<br>관가에서도 심봉사 일을 다 아는지라 노자를 내어주고 옷 일습을 내어주며 어서 바삐 올라가라 하니, 심봉사 하릴없어 집으로 돌아와 마누라를 부른다.<br><br>"뺑덕이네."<br>뺑덕 어미는 심봉사가 홧김에 물에 빠진 줄 알고 남은 살림 내 차지라고 속으로 은근히 좋아하더니 심봉사가 들어오니까 급히 대답하되,<br>"네, 네."<br><br>"여보 마누라, 오늘 관가에 갔더니 황성서 맹인 장치를 한다고 날더러 가라 하니 내 갔다 올 터이니 집안을 잘 살피고 나 오기를 기다리시오."<br>"여필종부라니 가군 가는데 나 아니갈까? 나도 같이 가겠소."<br><br>"자네 말이 하도 고마우니 같이 가볼까? 건넌말 김장자에게 돈 삼백 냥 맡겼으니 그 돈 중에 오십 냥 찾아 가지고 가세."<br>"애그 봉사님 딴소리 하네. 그 돈 삼백 냥 벌써 찾아 이 달의 살구값으로<br>다 없앴소."<br><br>심봉사 기가 막혀,<br>"삼백 냥 찾아온 지 며칠 아니되어 살구값으로 다 없앴단 말이야?"<br>"고까짓 돈 삼백 냥을 썼다고 그같이 노여워 하나?"<br>"네 말하는 꼴 들어본즉 귀덕이네 집에 맡긴 돈도 또 썼겠구나."<br><br>뺑덕 어미 또 대답하되,<br>"그 돈 백 냥 찾아서는 떡값, 팥죽값으로 벌써 다 썼소."<br>심봉사 더욱 기가 막혀,<br>"애고 이 몹쓸 년아, 천출 대효 내 딸 심청이 인당수에 망종 갈 때 사후에 신세라도 의탁하라 주고 간 돈, 네년이 무엇이라고 그 중한 돈을 떡값 살구값 팥죽값으로 다 녹여단 말이냐?"<br><br>"그러면 어찌하여요? 먹고 싶은 것 안 먹을 수 있소?"<br>뺑덕 어미가 살망을 푸이며,<br>"어쩐 일인지 지난달에 몸 구실을 거르더니, 신 것만 구미에 당기고 밥은 아주 먹기가 싫어요."<br><br>그래도 어리석은 사내라 심봉사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br>"여보게, 그러면 태기가 있나보오. 그러하나 신 것을 많이 먹고 그애를 나면 그놈의 자식이 시큰둥하여 쓰겠나? 남녀간에 하나만 낳소. 그도 그러려니와 서울 구경도 하고 황성 잔치 같이 가세."<br><br>이렇듯 말하여 행장을 차릴 적에, 심봉사 거동 보소. 제주 양태, 굵은 베로 중추막에 목전대 둘러 띠고, 노수 냥을 보에 싸서 어깨 너머 둘러메고, 소상반죽 지팡이를 왼손에 든 연후에, 뺑덕 어미 앞세우고 심봉사 뒤를 따라 황성으로 올라간다.<br><br>한 곳에 다달아서 한 주막에서 자노라니, 그 근처에 황봉사라 하는 소경이 뺑덕 어미가 잡것인 줄 인근 읍에 자자하여 한 번 보기를 원하였는데, 뺑덕 어미네가 으레히 그곳에 올 줄 알고 그 주인과 의논하고 뺑덕 어미를 유인할 제 뺑덕 어미 속으로 생각하되,<br><br>'심봉사 따라 황성 잔치 간다 해도 눈뜬 계집이야 참례도 못 할 터이요, 집으로 가자니 외상 값에 졸릴 테니 집에 가 살수 없은즉, 황봉사를 따라가면 일신도 편코 한철 살구는 잘 먹을 터이니 황봉사를 따라가리라.'<br>하고 심봉사의 노자 행장까지 도적해 가지고 밤중에 도망을 하였더라.<br><br>불쌍한 심봉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식전에 일어나서,<br>"여보소 뺑덕 어미, 어서 가세. 무슨 잠을 그리 자나."<br>하며 말을 한들 수십 리나 달아난 계집이 대답이 있을 수 있나.<br><br>"여보소 마누라."<br>아무리 하여도 대답이 없으니 심봉사 마음에 괴이하여 머리맡을 더듬은즉 행장 노자 싼 보가 없는지라 그제야 도망한 줄 알고,<br><br>"애고, 이 계집 도망하였나?"<br>심봉사 탄식한다.<br>"여보게 마누라, 나를 두고 어데 갔나? 나도 가세 마누라, 나를 두고 어데 갔나? 황성 천 리 먼먼 길을 누구와 함께 동행하며 누구를 믿고 가잔 말인가. 나를 두고 어데 갔나? 애고 애고, 내 일이야."<br><br>이렇듯 탄식하다가 다시 생각하고,<br>"아서라, 그년 생각하니 내가 잡놈이다. 현철하신 곽씨 부인 죽은 양도 보았으며, 출신 대효 내 딸 심청 생이별도 하였거든, 그 망할 년을 다시 생각하면 내가 또 잡놈이다. 다시는 그년을 생각하면 말도 아니하리라."<br><br>하더니 그래도 또 못 잊어,<br>"애고, 뺑덕 어미."<br>부르며 그곳에서 떠났더라.<br><br>외로운 나그네로 그렁그렁 가노라니 때는 마침 오뉴월 더운 때라 무더위는 불 같은데 비지땀 흘리면서 한 곳에 당도하니 희맑은 시냇가에 멱감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재담하며 물소리를 내는지라 심봉사,<br><br>"애라, 나도 목욕이나 하여야겠다."<br>하고 고의 적삼 활활 벗고 시냇물에 들어앉아 목욕을 한참 하고 물가로 나오면서 옷을 찾아 더듬으니 심봉사보다 더 궁한 도둑놈이 집어 들고 달아났다.<br><br>벌거벗은 알봉사가 불같이 따가운 볕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홀로 앉아 탄식한들 그 뉘가 옷을 주랴?<br>그럴 즈음 무릉 태수가 황성 갔다 오는 길에 벽제 소리 요란하다. 벌거벗은 알봉사가 불두덩만 감싸쥐고 소리친다.<br><br>"아뢰어라! 아뢰어라! 급창아 아뢰어라! 황성 가는 봉사다. 진정(사정을 진술한는 것)차로 아뢰어라."<br>행차가 머물렀다.<br>"소맹은 황주 도화동에 사는데, 맹인 잔치에 가다가 하도 덥기로 이 물가에 목욕하던 사이에 의복과 행장 일체를 잃었으니 세세히 두루 찾아 주시오."<br><br>옷을 얻어 입고 심봉사가 겨우 황성에 당도하니 각도 각읍 소경들이 들거니 나거니로 객사마다 들끓었다. 소경이란 소경들은 장안에 그득하니 눈이 성한 사람마저 병신으로 보였다. 분부 받은 군사들이 푸른 영기 둘러메고 골목 골목 두루 돌며 큰소리로,<br><br>"각도 각읍 소경님네, 맹인 잔치 끝막이니 바삐 가서 참례하오."<br>알리며 지나가매 객사에서 한숨 쉬던 심봉사 바삐 떠나 대궐로 찾아드니 수문장이 좌기하고 낱낱이 오는 소경 점고하여 들이었다.<br><br>이때에 심황후는 나날이 오는 소경들의 거주 성명을 받아 보나 목을 늘여 고대하는 부친 성명 없는지라 눈물 흘리며 탄식했다. 삼천 궁녀 시위하니 크게 울지 못하고 옥 난간에 나앉아서 문설주에 옥면을 대고 혼잣말로, <br><br>"불쌍하신 우리 부친 세상에 사셨나 죽으셨나? 부처님이 영검하여 그동안에 눈을 떠서 맹인 잔치 빠지셨나? 당년 칠십 노환으로 병이 들어 못오시나? <br>오시다가 멀고 먼 길 노중에서 무슨 낭패 보셨는가? 이 몸이 살아나서 귀하게 되었음을 아실 리가 만무하니 안타깝고 원통하다."<br><br>이렇듯 탄식하는데, 이윽고 모든 소경들이 궁중으로 들어와서 벌려 앉거늘 말석에 앉은 소경을 유심히 바라보니 머리는 백발이나 귀 밑에 검은 때가 있는 것이 부친이 분명했다.<br><br>심황후 시녀를 불러 분부한다.<br>"저기 앉은 늙은 소경 이리로 데려 와서 거주 성명을 아뢰게 하라."<br>심봉사는 더듬더듬 일어나서 시녀를 쫓아 조심조심 탑전으로들어가서,<br><br>"소생은 본래 황주 도화동에 거주하는 심학규라 합니다. 이십에 소경이 되고 사십에 상처하여 강보에 싸인 딸을 동냥젖을 얻어 먹여 근근히 키워 내어 15세가 되었는데 이름은 심청이요,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br><br>그것이 밥을 빌어 연명하며 살아갈 때 몽운사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지성으로 시주하면 감은 눈을 뜬다기로 남경 장사 선인들께 공양미를 얻으려고 아주 영영 팔려가서 인당수에 죽었으나 딸만 죽고 눈 못 뜨니 못쓸 놈의 팔자소관 진작 죽자 하다가 탑전에서, 세세한 연유를 낱낱이 아뢰고 죽어 갈 모양으로 불원천리 왔습니다."<br><br>원통한 신세 사연을 낱낱이 아뢰고 엎어져 백수풍진 고루 겪은 두 눈에서 피눈물 흐르더니,<br>"애고, 내 딸 청아!<br>하고 땅을 치고 통곡함을 마지 않았다.<br><br>심황후는 이 말을 들으시매 말을 다 마치지도 아니하여 눈에서는 피가 돋고 뼈는 녹는 듯 하기에 부친을 부축하여 일으켰다.<br>"애고 불쌍한 아버지! 어서 눈을 떠서 나를 보소서."<br><br>이 말을 들은 심봉사가 어찌나 반갑던지,<br>"으흐흐! 이게 웬일일고? 출천 대효 내 딸 청이 살았다니 그게 웬말이냐? <br>내 딸이면 어디 보자!"<br><br>하는데 흰 구름이 자욱하며 청학, 백학, 난봉, 공작이 운무 중에 오고가며 심봉사의 머리 위로 안개마저 서리며, 심봉사의 두 눈이 번쩍 뜨이매 천지일월 밝아진다.<br><br>심봉사 마음에 흐믓하나 어찌할 바 모르면서 큰 소리를 질렀다.<br>"애그머니! 애고, 어쩐 일로 양쪽 눈이 환하더니 온 세상이 허전하구나! 감았던 눈 번쩍 뜨니 천지일월 반갑도다!"<br>딸의 얼굴 쳐다보니 칠보화관이 황홀하여 뚜렷하고 어여쁘다.<br><br>심봉사는 그제서야 눈 뜬 줄을 알아차려 사방을 둘러보니 형형색색 반갑도다. 어찌나 반갑던지 심봉사는 와락 달려들었다.<br>"이분이 누구뇨? 갑자 시월 초파일날 꿈에 보던 얼굴일세. 음성은 같다마는 얼굴은 초면일세. 허허 세상 사람들아 고진감래 홍진비래는 나를 두고 한 말일세.<br><br>얼씨구 좋을씨구 지화자 좋을씨구! 어두컴컴한 빈 방안에 불 켠 듯이 반가우며 산양수 큰 싸움에 조자룡 본듯 반갑도다! 어둡던 두 눈 뜨니 황성 대궐이 웬말이며, 궁중을 살펴보니 죽은 몸이 한 세상에 황후되고 사십여년 긴긴 세월 앞 못 보던 내 눈을 홀연히 다시 뜨니 이는 모두 옛글에도 없는 일.<br><br>허허 세상 이런 말을 들었는가? 얼씨구 좋을씨구 지화자 좋을씨구! 이런 경사 어디 있나? 칠십 평생 처음일세!"<br>삼황후도 진심으로 기뻐하며 부친 손을 이끄시고 삼천 궁녀 옹위하여 내전으로 들어가니 황제 또한 기꺼움을 못 이기며 소경 아닌 심학규를 부원군에 봉하시고 저택이며 전답이며 남녀 종을 내리셨다.<br><br>심부원군이 선영과 과씨 부인 산소에 영분을 한 연후에 황성 올라오다 중로에서 인연 맺은 안씨 맹인을 맞아들여 그에게서 칠십에 생남하고, 삼황후의 어진 성덕 천하에 가득하니 만백성들 천세 만세를 부른다. 그리하여 만백성이 심황후를 본받으니 효자 열녀가 곳곳에서 나왔다.
황주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봉사가 있으니,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하던 거족으로 명망이 자자하더니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여지고 어려서 눈을 못 보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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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눈을 뜨고, 심청이가 황후가 되어서 어진 성덕 천하에 가득하니 만백성들 천세 만세를 부른다. 그리하여 만백성이 심황후를 본받으니 효자 열녀가 곳곳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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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전기수|여기가 끝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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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meRPG|타임머신 RPG/조선시대/길거리|다른 일 하러 가기}}</option></ch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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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0일 (목) 15:08 기준 최신판

레벨
  • 조선시대 돈 : 냥
  • 대한민국 돈 : 원
  • 미래민국 돈 : 쀠꽈뿠
  • 체력 포인트 :
  • 스킬 포인트 :
  • 공격력 :
  • 방어력 :

전기수  : “오늘은 홍길동전입니다!”
세종 즉위 십오년에 홍회문 밖에 한 재상이 있으되, 성은 홍이요, 명은 문이니, 위인이 청렴강직하여......

 

......천생이나 적원을 풀어 버리고, 효우를 완전히 하여 신수를 쾌달하니 만고에 희한한 일이기로 후인이 알게한 바이러라.

전기수  : “여기가 끝입니다. 감사합니다.”